이번호 보기


"성철 대선사 추모 칠일칠야 참회법회"를 돌아보고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특집 - 조인숙 1994년 11월 153호
내용미입력시월 십육일, 여름 내내 내리지 않던 비가 이 가을에 마치 여름 장마처럼 하루 종일 쉼 없이 내렸다. 여름 가뭄에 시달린 농민들이 행여나 겨울 가뭄에 애를 먹지 않을까 걱정하던 차에 내리는 비라 반가웠다. 그러나 한편으론.“성철 대선사 추모 칠일칠야 참회법회”소식을 듣고 해인사로 내려가는 터라 이 비가 행사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까 하여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해인사 홍류동 계곡에 들어서니 가을 단풍잎 속에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에 적힌 “남을 위해 기도 합시다”라는 글이 언뜻 다가오지는 않지만 참회법회의 의미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큰길에서 백련암 가는 길로 접어드니 곳곳에 걸려 있는 “남을 위해 기도 합시다”하는 색색의 현수막이 사뭇 경쾌했다. 큰스님이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축제 같았다. 백련암에 이르니 높은 축대 위에 걸려 있는 큰스님이 그 옛날에 직접 그리셨다는 원상圓像이 힘 있게 나를 압도하였다. 마당 안에는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일체 중생을 모두 다 행복하게 해주십시오.”하는 큰스님의 가르침을 새겨 놓은 만장이 빗발 속에 의연하게 서있고, 사람들은 분주하게 오갔다. 법당에서는 보살님들이 벌써 천배 기도에 들어가 있었다. 잰 걸음으로 오가며 행사를 돕는 일손에서나 일심으로 참회의 절을 올리는 숙연한 표정에서 큰스님을 그리며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행사 관계로 바쁜 원택 스님을 어렵게 만나 뵙고 “성철 대선사 추모 칠일칠야 참회법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행사는 저희 백련암 백련문도에서 큰스님의 일주기를 맞이하여 평소 큰스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을 다시 되새기고 이를 생활에서 실천하자는 뜻에서 마련하였습니다. 큰스님은 평소에 “불교의 자비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일체 중생에게 베푸는 것이다. 나를 위해 기도 하지 말고 ‘일체 중생이 다 행복하게해 주소서’ 하는 마음으로 백 팔배 참회 기도를 하라”고 불자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곤 했습니다. 또 저희 문도들에게도 “일체 중생을 위해서, 일체 중생을 대신해서 모든 죄를 참회하고 기도하는 것이 부처님의 참다운 제자이다”라고 누누이 강조하셨습니다. 이 뜻을 받들어 동체대비同體大로써 더불어 사는 열린사회를 이 땅 위에 이룩하자는 서원에서, 우리의 모든 이웃과 큰스님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고 되새길 수 있는 “성철 대선사추모 칠일칠야 참회법회”를 마련하여 큰스님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대신하고자 한 것입니다. 참회법회는 시월 십칠일 아침 아홉시부터 이십사일 아침 아홉시까지 이레 동안 쉬지 않고 두 시간씩 일체 중생의 행복을 비는 일천 배 참회기도를 올리죠. 그렇게 칠일 낮밤으로 이어지는 일 천배 기도는 모두 팔만사천 참회 기도로 완성됩니다. 특히,“남을 위해 기도합시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날마다 그 날의 주제를 정하여 우리 주변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어요. 첫째 날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참회 기도의 공덕을 돌리고, 둘째 날은 마음이 아픈 이들을 위해 참회 기도의 공덕을 돌리고, 셋째 날은 병든 이들을 위해 참회 기도의 공덕을 돌리고, 넷째 날은 버림 받은 이들을 위해 참회 기도의 공덕을 돌리고, 다섯째 날은 인류의 화합을 위하여 참회 기도의 공덕을 돌리고, 여섯째 날은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 참회 기도의 공덕을 돌리고, 마지막 날은 자연의 모든 생명을 위하여 참회 기도의 공덕을 돌립니다. 큰스님의 일주기를 맞이하여 칠일낮밤 동안 이어지는 남을 위한 기도가 이 뒤로도 끊이지 않고 나라 안 곳곳의 사찰과 기도처에서 불철주야로 계속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일환으로 참회법회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간단한 안내문과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라고 적힌 스티커를 배포하고 있어요. 생각해 보십시요. 고통 받는 사람, 억압 받는 사람, 대립 속에 반목하는 이 그리고 뭍과 물과 하늘의 일체 중생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딘 가에 늘 있다는 것을, 연화 세계가 따로 없어요. 큰스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원택 스님의 얘기를 듣는 동안 어느덧 비는 그치고 밤 하늘에 달무리와 별이 보였다. 왈칵 반가운 마음에 불이 환하게 밝혀진 큰스님 영전이 있는 고심원으로 올라갔다. 주장자를 들고 있는 큰스님을 뵈니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생전에는 어렵기만 했는데, 알 수 없는 친근감이 느껴졌다. 살아가는 데 자기 중심을 잃어 버리고 물질의 풍요에 싸여 인간성을 상실하는 요즘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사회적 무리도 많고 지존파 사건과 같은 사건, 사고도 많은 때에 성철 큰스님의 “남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 더욱 소중하게 와 닿았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은 결국 남에게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지금은 비록 이 운동이 좁은 가야산 계곡에서만 울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나라와 종교와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장벽을 허물어 버리는 몌아리가 되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처럼 어둠 속에서 백련암을 감싸고 있는 산자락이 묵직하게 믿음직스럽기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