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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선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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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신규탁 1994년 11월 153호
내용미입력성철性徹스님(1912~1993)의 사상을 말해 주는 문헌으로 ⌜한국불교의 법맥⌟(1976),⌜선문정로禪門正路⌟(1981년),⌜본지풍광本地風光⌟(1982년)들 비롯하여 십여 종의 책이 있다. 선불교에 대한 성철스님의 입장은 “육조단경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육조 스님의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의 선양에서 잘 드러난다. 곧, 육조를 중심으로 하는 조계선의 흐름 속에서 성철선도 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조계의 정신은 남악 회향, 마조 도일, 백장회해, 황벽 희운, 임제 의현을 거치면서 저마다 독특한 언어 표현을 통해 돈오무심 내지는 돈오돈수를 제창했다. 후세의 학자들은 이것을 일러 임제의 가풍으로 부르기도 한다. 바로 이 가풍을 성철 선사가 잇고 있다. 임제의 가풍 임제의 가풍은 그 근원이 물론 ⌜육조단경⌟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스승인 황벽 선사에서부터 그 특징이 두두러지게 나타난다. 황벽 선사는 ⌜전심법요⌟에서 당시의 세태를 이렇게 말한다. “요즈음 도를 닦는 이들은 제 마음을 깨치려 하지 않는다. 마음에 모두 간직되어 있건만 부족하다고 여겨 모자라는 것을 보태려고 마음을 낸다. 그리하여 형상화된 단계적 절차를 밟아 수행한다. 이것은 악법이며 깨닫는 길이 아니다.” 이 ⌜전심법요⌟속에서 황벽 선사는 당시 최대의 관심사였던 ‘점차적으로 수행을 쌓아서 깨 닫을 수 있는가’에 대해, 마음 밖에서 도를 구하지 말고 무심無心하라는 말로 일관한다. 돈오돈수頓悟頓修로 표현 하기도 하는 이 돈오무심 사상은 당대 선의 근본 흐름이다. 마음 그 자체에 모두 갖추어 있기 때문에 외면적인 수행의 절차를 거쳐 도를 깨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황벽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육도만행을 닦아서 부처가 되려 한다면 이것은 단계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단계적으로 깨쳐서 된 부처는 애초부터 없다.”,“ 제 마음이 본디 부처라는 사실을 단박에 깨달아, 더 얻을 것도 없고 더 수행해야할 것도 없으면 이것이 최고의 도이며 진짜 부처이다.”황벽 선사의 이 돈오무심 사상은⌜임제록⌟에 그대로 계승된다. 곧 “얻으면 탁 얻는 것이지, 세월을 거듭하여 얻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바로 지금이지 세월을 거듭해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는 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같은 곡조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지듯이, 많은 선사들이 돈오무심곡을 연주하지만 백이면 백 모두 다르다. 임제선의 가락은 뭐니뭐니 해도 현실에 딱 붙은 마음 씀씀이이다. 이 마음은 현실의 배후에서 우리를 조정하는 근원적인 존재는 아니다. 선사상은 일반 명제로 되는 순간 그 본질과는 멀어진다. 구체적인 순간순간의 삶 속에서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마음은 버려두고 외형적인 단계를 설정하여 점차적으로 수행하여 도를 깨치려는 수행자들에게 임제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수행하는 여러분, 제가 보는 바로는, 보신불, 화신불의 머리를 싹 베어야합니다, 등각과 묘각의 지위에 올라도 수갑에 묶인 사람입니다.” 육조 스님을 스승으로 받드는 선가에서는 기도나 단계적인 절차와 외면적인 행법은 도를 깨닫는 방법과 거리가 멀다고 한다. 이런 방법으로 부처가 된 겨우는 없다고 마조, 백장, 황벽, 임제 선사들은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육조대사의 가르침이라고 표방하여 제 마음을 깨치라고 부르짖는다. 성철선의 특징 성철선의 특징은⌜본지풍광⌟에 잘 드러난다. 이 책에는 돈오무심을 기준으로 역대 선사들의 공안을 기묘적절하게 배합하여 수행자의 집착을 제거하려는 성철선사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그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옛 조사들의 언구를 의심하여 실답게 참구하여 확철 대오 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 사상은 ⌜본지풍광⌟전체에 흐르는 사상이다. 역대 조사들이 남긴 화두와 공안을 많이 인용하여 이것들을 끊임없이 의심하여 실참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57칙의 조주대사趙州大死도 그런 보기 가운데에 하나이다. 여기에서는 ‘실참實參’할 것과 ‘실오實悟’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끝내는 이렇게 말하는 성철스님 마져도 의심하라고“같은 문으로 출입하는 놈은 나와는 철천지 원수다”하여 아예 발 붙일 곳을 막아 버린다. 철저히 의심하도록 권한다. 실참하지 않고 그냥 부처나 조사의 말을 무반성적으로 접수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역대 조사들의 공통된 입장이고 성철 선사도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속에서 반조되지 않은 일체의 언구를 배척한다. “말을 따르는 자는 죽고 글귀에 머무는 자는 미혹한다”(⌜본지풍광⌟89쪽)고 단호하게 거부한다. 둘째, 남의 언구에 매이지 않는 자기 자신의 체험을 중시하였다. 이 사상은 조계선의 핵심으로,⌜본지풍광⌟의29clr 조주계미趙州契彌에서 잘 드러난다. 이 곳에서 성철 선사는 “대중들이여, 말을 찾는 자는 죽고 글귀를 쫓는 자는 읽어 버린다. 나아가면 은산철벽이요 물러서면 만 길의 깊은 구덩이다......,투탈透脫한 한마디를 어떻게 말하려는가?”라고 한다. 이는 화두에 대해 세간에서 상투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세태에 대해 성철 선사는 “잘못에 잘못을 더하는군. 얼음을(부싯돌로 삼아서)부딛혀서 불을 구하는 군”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것은 조사들의 옛 기연을 상투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본지풍광⌟의 49칙에서 조주스님과 운문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특별히 많이 나오는 것도 성철선 이해의 관건이 된다. 곧, 말끝마다 부처님, 불법, 도를 운운하여 도리어 거기에 얽매이는 모범생들을 꾸짖는 말이다. 이런 사상은 운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떤 선승이 불조를 초월하는 한마디를 말해 달라고 하자 운문스님이 대답하기를 “호떡”이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의 행간에 가려진 부분을 읽는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곧 자기 자신은 내던져 두고 밖으로 부처나 조사를 찾는 그런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네가 속이 허해서 그러는구나.“호떡 먹고 속 채워서 부처니 조사니 하는 헛소리 하지 말아라!” 셋째, 무심無心의 강조하였다. 성철선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무심의 강조를 들을 수 있다⌜본지풍광⌟의 제32칙 운문시궐을 보자. “마음 그대로가 부처이고, 무심이 도이다. 다리 셋인 나귀가 발굽을 놀리며 나아가니, 호남의 여러 스님들도 그렇다.” 여기에서 “다리 셋인 나귀가 발굽을 놀리며 나아가니”는 마조스님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무심사상은 마조선 에서 단적으로 들어난다. 이 무심의 정신은 조계선풍의 핵심으로 그 연원은 깊고 그 전통은 면면히 이어진다. 단지 여기서 우리는 성철선性徹禪과 마조, 백장, 황벽으로 이어지는 임제선臨濟禪과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철선과 임제선이 모두 돈오를 핵심으로 하고 있는 점에는 같다. 그리고 그 돈오사상은 무심사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같다. 그런데 임제선의 경우는 무심보다는 돈오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당시에도 북종이라고 불리우는 신수 계토의 선사들에 대한 구별 의식이 있었다. 그 결과 육조를 스승으로 받드는 후손들은 돈오사상에 역점을 두면서 무심사상을 곁들였다. 반면 성철선의 경우는 돈오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무심을 강조한다. 이것은 성철스님이 활동한 이 나라의 불교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규봉 스님의 돈오점수 사상과, 남종선을 돈오점수로 잘못 이해한 보조스님과,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눈먼 수행자와 연구자들의 어리석음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무심내지는 돈수가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규탁 선생님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봉선사에서 월운스님에게 경전을 수업하였다. 동경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연세대학교에서 중국 불교철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