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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사찬술의 찬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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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학 - 조기영 1994년 11월 153호
응사찬술應事讚述의 찬술시讚述詩란 부처님을 비롯한 조사 및 고승들의 행적과 불사를 찬양하여 술회하는 응송應頌 형태의 불교시가를 말한다.‘찬술’ 이라는 용어는 먼저 ⌜상궁유마소上宮維摩疏⌟에서 부처님의 행적을 찬양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였고, 다시 일본 진언종眞言宗의 시조 흥법대사弘法大師 공해公海의 ⌜반야심경비건般若心經秘鍵⌟에서 경전의 취지를 강의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송나라 도원道源이 지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의 29권과 30권에서는 찬讚.송頌.게偈.시詩와 명銘.기記.잠箴.가歌를 수록하여 각각 다른 개념의 장르임을 나타냈고,이러한 ‘찬’은 ‘찬영찬연’(⌜법화경법화경⌟〈안락행품안락행품〉),‘찬송찬송’(⌜법화경법화경⌟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찬탄讚嘆’ (⌜구사론俱舍論⌟),‘찬탄讚嘆’(⌜잡아함경雜阿含經⌟),‘찬불讚佛’(⌜구사론⌟),‘찬불게讚佛偈’(⌜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찬패讚唄(⌜승사략僧史略⌟) 등으로 다양하게 명명되면서 사용되었다. 본디 ‘찬讚’이란 문체의 한 유형으로서 서사증서사증의 ⌜문체면변文體明辯⌟에 따르면 “찬이라고 하는 문체는 촉박하여 광활하지 않으며 네 글자의 구로써 말을 맺는다.(讚之爲體 促而不曠 結言於四字之句)‘라고 하여 간략한 4언시임을 뜻하면서 잡찬雜簒, 애찬哀讚, 사찬史讚으로 나누었고,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는 그 개념을 ’밝힌다(明)‘또는 ’조장助長‘한다(助)’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본고에서 말하는 찬술시란 ‘찬’이라는 문학 형식에 개개인의 문학 감정 및 술회를 가미한 노래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개개인의 문학 감정과 술회는 다름 아닌 부처님을 비롯한 조사와 고승의 행적, 그리고 불사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하여 찬술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마명馬鳴의 ⌜불소행찬佛所行讚⌟을 들고 있으며,이러한 서사적 현태의 찬술시는 그 뒤 고려 충숙왕 때 운묵雲黙의〈석가여래적송釋迦如來蹟頌〉이나〈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그리고〈석존일대기釋尊一代歌〉등이 불교시기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선문염송집선문염송집⌟에 실린 게송은 그 내용이 대부분 선가의 행적과 일화에 대한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찬술의 성격을 지닌 작품도 나타나고 있다. 다음의〈주행칠보周行七步〉에 관한 게송은 찬탄讚嘆의 형태를 지닌 찬술시가 아닐 수 없다. 세존께서 처음 탄생하실 때 두루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시고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시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하늘 위나 하늘 아래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고 하셨다.(운문언雲門偃이 염하되 “내가 그 때 이 꼴을 보았더라면 한 방망이로 때려 죽여 개나 배불리 먹게하여 천하가 태평하게 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본디 ⌜보요경普曜經⌟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서 이러한 부처님의 행적에 대해 대홍은大洪恩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동, 서, 남, 북 사방이며 위와 아래 네 귀로다. 하늘은 높고 땅은 두터우며 토끼는 뛰고 까마귀는 난다. 당시의 마갈타의 분부가 눈 앞 의 근기를 얼마나 묵살 했던가.사 십 구 년 동안 거듭 주석을 내었으나 파시는 본디 곤륜족 이로다. 東西南北上下四維天高地厚兎走烏飛當時摩竭令기근目前機四十九年重指注波斯元是崑崙兒 마갈타摩竭陀는 중인도에 있던 옛 왕국으로 부처님이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서 성도하셨듯이 불교와 매우 관계가 깊었던 나라이다. 당시 반바사라 왕은 부처님을 위하여 죽림정사竹林精舍를 지었고, 그 다음 아사세왕도 불교의 외호자가 되어 제일회의 불전을 결집하였다. 파사는 당시의 페르시아 족속을 말한다. 다시 해인신海印信은 이러한 부처님의 행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왕궁에 탄강하시어 본연의 진리를 보이시고 일곱 걸음 두루 걸으시며 거듭 펼치셨도다.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켜도 아는 이 없고 홀로 외친 우뢰같은 소리 대천세계 진동했다. 당시에 만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자 있어서 취모검을 빼들었다 해도 누가 감히 나서리오.
縡음王官示本然 周行七步又重宣 指天指無人會 獨震雷音徧大千 當時若有不甘者 略擧吹毛孰敢先 부처님의 본연한 자품과 “주행칠보周行七步”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친 모습에 대해 감복하고 찬탄하였다.위의 대헝은과 해인신의 두 게송에 비하여 다음의 정엄수淨嚴燧의 게송은 선기禪機의 바탕에 비유의 수법을 가미한 문학성이 돋보이는 찬술시에 해당한다. 봄을 맞은 산천 모두가 곱고 고와라 비 스친 교목 숲엔 두견이 울어댄다. 달 밝은 밤 화루에 인적이 고요한데 즐거운 술자리 노래에 꽃잎이 날린다. 承春高下盡鮮妍雨過喬林叫杜鵑 人靜畵樓明月夜 醉歌歡酒落花前 이러한 찬술시의 문학성은 ⌜선문염송집⌟을 엮은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혜심의 찬술시인〈국사원적일國師圓寂日〉은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입적하신 날을 기념하여 지은 것으로 우리나라 선문禪門 도량의 기반을 닦은 공적을 높이 기리고 있다. 봄 깊은 뜨락이 티끌조차 없이 깨끗한데 조각조각 푸른 이끼 위에 꽃이 지는구나. 그 누가 소림의 소식이 끊어졌다 하리오 저녁 바람이 때마침 몰래 향을 보내나니. 春深脘落淨無埃 片片殘花鮎綠苔 誰道少林逍息絶 晚風時送暗來 티없이 깨끗한 절 뜨락에 봄이 깊 자 꽃잎이 떨어져 푸른 이끼 위에 내리나니 이는 본연이며 진여眞如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보조국사의 참 모습을 이러한 자연 만상을 통하여 찬탄하면서 소림사에서 선전禪定을 세운 달마達磨의 선문 맥락이 보조 국사가 입적을 하였더라도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고아高雅한 풍취로써 노래하였다. 그리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일연일연의 ‘찬’은 바로 찬술시의 대표적인 형태에 해당한다. 혜심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연의 찬술시는 단지 개념적인 ‘찬’에 머물러 찬송하거나 찬탄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술술’에 충실하여 문학적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학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인권한 교수는 “시적 발상은 해당 항목의 불교적 사례에 두고 있다 하더라도 전혀 그의 정서적 안목으로 파악된 내용을 시적으로 승화시켜 이를 문학적 표현으로 칠언절구七言絶句의 한시 틀에 담음으로써 독창적인 시를 창조하고 있다”하여 단지 찬양이나 찬송에 그치지 않고 좀더 ‘술작述作’의 요소를 충실하게 펼친 문학작품임을 밝힌 바 있다. ⌜삼국유사⌟에 실린 일연의 찬술시는 모두 사십 여덟 수인데 다음의 찬술시는 권3,흥법興法편의〈순도조려順道肇麗〉조에 실린 작품이다.
압록강에 봄이 깊 자 물가 풀빛 어여쁘고 흰 모래밭 갈매기는 한가롭게 조는구나. 노 젓는 소리에 깜짝 놀라 소리치며 멀리 날고 어디서 온 고깃배인가 안개 속에 손이 내리네.
鴨綠春深渚草鮮 白沙鷗鷺等閑眠 忍鷺柔櫓一聲遠 何處漁丹客到烟
고구려 소수림 왕 때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파한 순도의 행적을 기리면서 일연이 느낀 감정을 묘술하고 있다. 고깃배에서 내린 안개 속의 손님은 다름 아닌 순도를 말하며 그로 인해 비로소 우리나라에 불교가 흥성할 수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다음의 탑상塔像편의 〈가섭불연좌석迦葉佛宴坐石〉조에 실린 찬술시는 찬송이나 찬탄의 내용이라기보다는 회고 형식의 내용을 담고 있다. 불교가 침체된 날 기억할 수 없고 오로지 연좌석만 예전 모습이로다. 그 얼마나 상전이 창해가 되었던고 애달프게도 우뚝이 아직 남아 있구나.
惠日沈輝不記年 唯餘宴坐石依然 桑田幾度成滄海 可惜巍然尙未遷
신라 월성月城 동쪽 용궁 남족에 남아 있는 가섭불의 연좌석에 대해 탄식 한 노래이다. 신라 진흥왕 14년 2월에 이 곳에 신궁을 세웠는데 그 뒤 여기에서 황룡黃龍이 나타나자 왕이 다시 이곳에 황룡사를 세웠다. 그러나 두 번이나 불이 나서 지금은 연좌석만 남아 있다. 불사佛寺 창건의 설화에 대하여 자신의 소감을 덧붙인 찬술로서 위에서 소개한 찬탄의 작품들과는 달리 예일을 회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나옹懶翁 왕사王師의〈지공화상탄생지신指空和尙誕生之晨〉 역시 회고 형식을 갖춘 찬술시에 해당한다.
정면에서 뚫어지게 뵈옵노라면 소름 끼칠 그 기봉 험준도 하네. 서천의 모습을 알려고 한다면 한가락 피어나는 향연을 보라.
驀面相逢親見徹 機鋒嶮峼骨毛寒 諸人欲識西天面 一片香烟起骨看
스승인 지공 화상의 생신을 맞이하여 그의 초상화 앞에서 생전의 모습을 기리며 노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초상화가 지공 화상의 참 모습이라 할 수 없으니 화상의 진영은 바로 참선 속에 있다는 것이다. 수도 정진하는 가운데 삼라만상의 어느 것 하나 지공 화상의 모습이 아닌 것이 없으므로 지공 화상의 모습은 이렇게 피어 오르는 향의 연기 속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찬술시 가운데 ‘화찬畵讚’에 해당한다. 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 서산 대사西山大師가 지은 〈찬달마진영贊達摩眞影〉,〈찬선서진영讚先師眞影〉,〈달마도강도達摩渡江圖〉,〈최고운도崔孤韻圖〉등도 화찬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찬달마진영贊達摩眞影〉,〈찬선서진영讚先師眞影〉의 두 작품을 소개한다.
뜻이 크고도 우뚝 솟은 그대 누가 푸른 눈동자를 열었던가. 석양이 내리비치는 산빛 속에 봄새가 스스로 이름을 부르네.
落落巍巍子 誰開碧眼睛 夕陽山色裹 春鳥自呼名
구름을 끊어서 흰 장삼을 지었고 물을 베어 맑은 눈동자를 지었네. 뱃속에 가득히 주옥을 품었으니 신이한 광채가 두우성을 쏘았구나.
剪雲爲白社 割水作淸眸 滿腹懷珠玉 神光射斗牛
이 작품은 서역에서 온 달마대사의 2조 혜가彗可 대사의 신광神光과 같은 선정의 모습을 찬미하고 감탄한 노래이다. 초상화를 보면서 이들 조사들이 생전에 보인 뛰어난 수행과 불법의 전파, 그리고 신이한 행적 들을 회상하면서 마음으로 우러러 감복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찬술시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청허당 휴정 서산대사의 〈찬불讚佛〉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찬술시의 특징을 이해하도록 한다.
남을 보는 것 망령되지 않으며 나를 깨닫는 것도 생이 없어라.
출세하여 어찌 무엇을 일삼으리 사람마다 본래부터 태평한 것을.
觀他也不妄 覺自亦無生 出世訶何些 人人本太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