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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땅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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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숨결과 풍정 - 이호신 1994년 10월 152호
추석을 며칠 앞두고 사촌 형들과 벌초를 하려고 선산이 있는 강원도 원주문막에 갔다. 즐비한 무덤가에는 가을빛 바람 속에 패랭이꽃과 물봉선화 그리고 노오란 마타리가 하늘거리고 엉겅퀴 씨가 날렸다. 이 때 가묘인 할아버지 비석 앞에서 예년과는 달리 알 수 없는 비애가 싹터 올랐다. 성균진사를 지낸 할아버지는 북간도 용정에서 이십여 년 동안 민족 교육에 힘쓰고, 대성학교장 등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결국 이역에서 뼈를 묻었다. 일찍이 할아버지는 조선유림시찰단朝鮮儒林視察團으로 일본을 다녀온 뒤 이 땅의 교육에 뜻을 세우고 충주에서 호흥학교湖興學校를 설립하지만 일제의 간섭이 극심해지자 북간도로 이주하여 이민 교육에 뜻을 두었다. 산소에서 돌아온 뒤에 할아버지가 남긴 시를 후학들이 모아 엮은「옥포시집玉圃詩集」을 읽다가 북간도로 떠난 스슨을 사모하며 쓴 한 후학의 시에 가슴이 저며왔다.
높은신 덕 남기신 기운도 멀어만 지는데 적적한 산천은 몇 년이던가요.
학이 떠난 한포漢浦에 달만 뜨고
선생님 가신 문암文岩에 연기가 가렸네
속세에 다같이 안식처 없어
부평 같은 이 자취 누가 서로 잡으리
계시는 곳 모두가 조국 생각한다니
아침 저녁 자주 만나 깊은 인연 이루소서
할아버지의 시집을 넘기면서 지난 칠월 하순 백두산 길목에서 뜨겁게 달아오르던 기억이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연길延吉 땅을 밟았을 때에 마치 어린 시절 고향 같은 첫인상과 분위기에 느긋하게 여장을 풀다가 용정의 해란강에서는 감회가 거꾸러졌었다. 선구자의 땅, 용문교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니 그 참담한 유민들의 아픔과 민족의 수난사와 한 집안의 사연마저 저 물길 따라 흘러가고 말았는지 강둑에는 장꾼들만 웅성거리며 생존의 현장을 보여 줄 뿐이었다. 할아버지의 생애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녹아 있는 강가를 서성이니 알 수 없는 비애와 아득한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북간도의 벼농사는 조선족에 의해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그 날의 선구자를 떠올릴 셈인가.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산정의 일송정을 바라보며 누군가 시작한 선구자 노래는 마침내 일행의 합창으로 물결치고 노래의 감흥은 전율처럼 느껴졌다. 덜컹거리는 차와 비포장 도로의 먼지와 폭염 속에서’청산리 전투’지역을 지나칠 때는 모두가 가슴에 소낙비를 맞은 듯 숙연해졌다. 북만주의 광활한 땅을 눈보라 속에서 황무지 벌을 일구던 동포들, 항일독립운동이란 국권 회복의 뜨거운 기상으로 풍찬노숙하며 산야를 누볐던 그들의 소망과 얼은 진정 어디에 있는가. 지난 시절 내 할아버지의 한과 어린 아버지의 꿈과 지금의 내 발걸음은 다만 시대의 역사요, 세대의 삶으로 이해되고 얘기될 뿐인가. 북간도의 용정 출신으로 일제에 의해 옥사한 윤동주는’또 다른 고향’에서 민족의 유랑을 노래했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그 아픔의 시절,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또 다른 고향에서 진정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해란강의 달빛 아래서 그렇게 서성거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