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예전에는 산문에 따라 중창된 역사와 사찰이 내려오면서 가졌던 전통과 이념에 걸맞게 건축을 했다고 합니다. 돌계단 하나에도 사찰의 기본 사상이나 이념이 들어가게 했고, 사찰 내에서 건축뿐 아니라 사물이 놓인 장소,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장소 등을 고려함은 물론 자연 풍광과의 어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점을 무시해 버리고 단순히 사람이 거주하는, 심하게 말하면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법당을 짓는 실정입니다. 오늘 좌담회에서는 옛 가람들을 어떻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는지, 또 어떻게 건축되었는지 하는 점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얘기를 했으면 합니다. 신선생님은 평소 자신을 건축가라기보다는 목수라고 말씀하시는데, 목수로서 보는 요즘 사원의 건축 상황은 어떠한지 말씀해 주시지요
신영훈
최근에 어떤 비구니 스님을 뵈었는데, 절을 짓는 곳을 인수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집을 지어야 할지, 행정적으로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묻고 싶은데 누구에게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랍니다. 그러면서 불사를 일으키고 싶은 분들이 의논할 수 있는 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저도 동감입니다. 절을 새로 짓고자 하는 분들은 목재부터 목수 선택 등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많은데 그것을 자문할 수 있는 기구가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종단에서라도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제가 문화재 행정의 실무를 하면서 보면 스님들이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야”이게 어째서 이렇게 되었느냐”고 놀라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총무원에서 문화재위원 두 분을 내보내서 예산 논의 문제부터 조사 참여하도록 하는 겁니다.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절을 위해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면, 절집의 사정을 모르면서 제멋대로 하는 것들을 막을 수가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한번 걸러내거나 정리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니까 꼭 나중에 문제가 벌어집니다. 앞으로 총무원에서 스님들 두 분이 나가 당연직으로 앉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팔십 퍼센트가 불교문화재인데 아무도 관여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중앙뿐 아니라 각 도에도 문화재위원회가 있으니까 각 도의 교구 본사에서 한 분씩을 추천해 당연직으로 해야 합니다. 워낙 호대한 양이 불교문화재이니까 행정에서도 반대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문제를 이번 개혁회의에서 다루어 주었으면 합니다.
사회
지난 번 개혁회의에서 들은 얘기인데, 이제 겨우 국립공원관리공단 이 사회에 우리 측 이사 세 분이 확보되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국립관리공단 이사회도 중요하지만 종단 입장에서 문화재전문위원이나 문화재위원회에 스님들이 많이 참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찰 건축 불사에 문화재위원회에 스님들이 많이 참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찰 건축 불사에 문화재위원회에서 분석, 진단하고 종단 차원에서 그런 불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주명덕
문화재위원회도 참여하고 총무원에도 그런 위원회가 있어 샘플을 만들어 말사에서 불사를 할 때 제시하면 좋겠군요. 제가 처음 운문사에 갔을 때 절에 시멘트를 바르고 있더군요. 이끼가 낄 것을 걱정했더니”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그래요. 그런 과정을 몇 번 겪더니 나중에 스님, 선생님들을 모시고 제대로 하더군요. 그런 것을 볼 때 스님들 스스로 눈이 뜨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사회
자각되기 전까지 파괴되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신영훈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존 사찰에서 새로 생기는 기능 때문에 자꾸 추가되는 건축물들이 지어질 때, 어떻게 절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화재위원들이 속인들이기 때문에 절집 사정은 모릅니다. 제게 필요하긴 할 텐데 잘 안 어울린다는 생각밖에는 못하며, 그 절이 왜 저것을 요구하는지를 모릅니다. 만일 그 자리에 스님이 계셨더라면 절집에 대한 내력 때문에 그런 건물이 거기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강력하게 얘기가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행정을 보는 친구들이 필요에 의해 무엇을 하고 싶다. 예를 들면, 해인사에 팔만대장경 판고를 만든다고 했을 때 절에는 그것이 필요 없거든요. 물론 있어서도 안 되지요. 그 때 스님이 계셨더라면 아마 그런 발상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것도 앞으로 정리해 나가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사찰에 대한 개념 정리를 한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절이 조선왕조 시대의 것이거든요. 그런데 사는 사람들은 현대인들이란 말입니다. 현대와 조선 시대는 벌써 반 세기. 일 세기가 떨어져 있는데 그건 맞지 않거든요. 서양에서는 그 생활이 많이 바뀌더라도 그런대로 줄기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문화는 과거의 것은 모조리 무시하고 새것만 들어와 있는 형편이란 말이예요. 그런데 절에만 가면 십구 세기로 밀어부쳐요. 그러니까 거기 절에 살러 간 스님들이 운신이 되어 그 집에 매력을 느끼고 들어 앉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러므로 장차 이십일 세기 사원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개념을 정리하고 어떻게 지을 것인가 하는 이상형을 제시하지 않으면, 날마다 신구 문제에만 부딪쳐 저것을 부술 것인지 말 것인지로 도량이 시끄러울 겁니다. 종단 차원에서도 이십일 세기에 바람직한 사원의 도량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미나를 해야 합니다. 절을 짓고 싶어하는 사람 대부분이 법당을 십구 세기로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오늘날의 건축을 지어야 하는데, 건축물로서 발주하는 스님은 십구 세기 것을 원합니다. 그런데 짓는 사람은 십구 세기의 건축은 모르고 이십 세기의 건축밖에 모르거든요. 건축주, 시공하는 사람, 거주하는 사람 생각이 저마다 다르니까 이 놈의 집이 공중에 떠 버립니다. 엉뚱한 집이 되는 거죠. 수덕사 같은 경우, 만일 다시 손을 본다고 하면 시주한 사람 입장은 시주한 돈이 없어져 버리니까 그렇게 할 수가 없죠. 목표가 흔들리니까. 그에 따라 개념 설정이 안 되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주명덕
절은 옛날 식으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모든 분야를 타임머신으로 돌려 놓는 것이 잘한 일은 아닌 겁니다. 이십 세기는 이십 세기에 맞는 건축이 있죠. 해인사의 경우도 이것은 신라 시대 것, 저것은 고려 말의 건물이라는 시대적 특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어졌습니다. 절만이라도 그런 역사성을 가졌으면 하는데, 모두 두들겨 부수어 버리고 새로 절을 지어 버리면 역사가 이 천년 되었으면 뭘 합니까.
사회
전통과 현대의 개념도 중요하지만, 어쨌든 집이란 것은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장소가 아닙니까. 신라 시대, 고려 시대, 십구 세기의 건축 양식을 원하지만 살고 있는 사람은 이십일 세기 사람들이잖아요. 텔레비전, 냉장고 등 생활 용품이나 최신의 문화가 절집에 들어와 있잖습니까. 예를 들면 해인사의 경우 외부에서 들어오는 차, 해인사 식구들의 차 할 것 없이 많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생활 양식은 이렇게 첨단을 걸으면서도 건축 양식은 고대에 살고 있단 말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고쳐 나가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지요.
주명덕
해인사의 경우도 지금까지 내려오는 주요 건물은 고수하고 다른 곳에 수도장을 만들어야 해요.
법등
저는 불사를 하면서 큰스님의 심부름을 하다 보니 신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종법에’성보관리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되어 있어요. 문화재전문위원이 불교를 모르면 접근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문위원들 가운데에 불교에 상당히 친근감을 가지고 있는 분이 많아요. 불교 성향이 짙은 전문위원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왜 종단 차원에서 전문위원회를 보존하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여러 번 제의한 일이 있습니다. 성보관리위원회는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는 데 필요합니다. 문화재 건축의 육칠십 퍼센트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원들을 우리 종단 내에서 전문위원으로 위촉해 놓으면 오히려 정부에서 우리에게 자문을 구하러 올 것입니다. 그런 역할을 해 놓으면, 성보 문화 소유주로서 불교의 위상이 대단할 것 아니냐 하는 문제를 수차 건의했죠.’문화재보호법’에 관여하면서도 공원관리 지정을 할 때, 사찰이 존재하기 때문에 반드시 관리위원회에 참여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전통사찰을 보존하는 시각도 일방적으로 해선 안 되겠다는 지적, 즉 스님들이 거기에 거주하는 가운데 전통사찰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문제를 이번 요구사항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문위원회에 참여해야죠. 일선에서 일을 하다 보면 우리와 전문위원들간에 많은 다툼이 있어요. 그것은 전문위원들이 원형 보존에만 중점을 두어 얘기할 때, 배치 입장보다는 생활자 입장에서 보면 차이점이 있어요. 그래서 당신들은 이것을 문화재 차원에서 시각적으로 보는 것 아니냐. 그러나 우리는 생활과 문화를 같이 봐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하죠. 옛선사들이나 선조들이 이런 것을 만들 때 1990년도 비지정문화재나 국보를 만들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니고, 그 당시에 사는 데 가장 멋있고, 아름답고 편리한 것을 만들다 보니까 그 가치가 오늘날 평가되어 문화재나 국보로 지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사원 건축물도 우리가 창조하고 변화를 가져온다면 후대에 가서 평가를 가져올 것이 아니냐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시각의 차이 때문에 다툼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종단 내에서 자주적으로 판단, 관찰한다면 신선생님의 말씀에 적극 동감합니다.
사회
향적스님은 프랑스의 수도원에서 많이 사셨는데, 그 곳에서는 고대 건축과 현대의 건축이 어떻게 조화되고 , 수도원과 문화 정책을 펴는 사람들과의 조화와 경영은 어떤지, 그리고 카톨릭이나 기독교 사상이 사원과 어떻게 접목되었는지에 말씀해 주시지요.
향적
르네상스 이전의 유럽의 모든 도시, 특히 프랑스는 성당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파리를 보면 노틀담 사원이 일번집니다. 우리는 시청이 중심인데 그 곳은 성당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되었습니다. 제가 있었던 곳에 높이가 백오십 미터인 고딕양식의 탑이 있었습니다.
본디 쌍탑으로 설계되었는데, 종교 혁명으로 공사가 도중에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정부에서 문화재 관광 측면에서 복원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시민들이 발끈하고 일어나 반대했죠. 지난 시대의 것을 복원하는 것이 무슨 문화재적인 의미가 있냐며 그대로 역사에 남겨 두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공사를 취소하게 되어요. 우리와는 달리 합리적이라고 느꼈어요.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 때,”원형 그대로 해야겠다”고 해서 불국사의 회랑이나 강화도만 해도 없어진 터에 집을 지어서 국고를 낭비하지 않았습니까. 그 쪽 사람들은 관광지로 된 수도원은 절대로 손대지 않습니다. 그들 성당의 모든 양식은 십자가 양식입니다. 교차되는 곳에 재단이 설치되고, 그 위에 첨탑이 올라갔죠. 종적이고 석조 건물인데, 외형보다는 내적인 것에 치중함을 느꼈습니다. 스테인글라스가 밖에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데, 안에서 보면 휘황찬란하더군요. 우리식으로 말하면 단청인데, 밖의 빛을 안으로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어 거기에 성경의 역사를 조각해서 밖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수도원은 역사가 이백 년밖에 안 된 성당을 넓히려고 고칠 때 설계를 벨기에, 독일 등 삼 개국에 내더군요. 설계만 하고 심사하는 데 이년이 걸렸습니다.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수도원 자체에서 위원회를 구성하더군요. 이 년 동안 설계를 하고 공사를 했으니 빈틈이 없죠. 얼마 전에 가보니까 생활의 편리 시설들은 잘해 놓고서도 겉으로는 옛 것과 현대를 너무 잘 조화시켜 놓았더군요. 일반인들은 스님네들이 차를 타고 가면 욕합니다. 옛 것에 대한 향수를 우리에게 충족 받기를 원하는 거죠. 그러나 스님네들은 현대인이기 때문에 편리하게 살고 싶은 거죠. 그 쪽 사람들은 그걸 잘 처리했습니다. 우리 법당은 횡적인데, 로마네스크 양식은 정방향 양식으로 회랑이 있고 고대 수도원은 성당이 따로 있습니다. 승방이 성당과 별개로 생활하는 데 아주 편리하게 되어 있어 바깥의 흙 하나 안 밟고 그 안에서 모든 게 이루어지도록 이어져 있습니다. 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아예 정부가 하고, 그 밖의 것은 자체 심의를 거치는 거죠. 우리는 절의 대중 가운데에서도 머리와 안목이 있는 사람이 있는데도 개인이 우선이죠. 뭐든지 크기만 하면 제 일인 것처럼 합니다. 그 사람들은 부처님 당시와 똑같이 대중회의를 많이 거쳐 결정합니다. 신부를 하나 만들어도 대중공사에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집을 하나 고치고 트는 데도 원장이 주도하지만 결정하지 않습니다. 전체회의가 있고 칠인위원이 있어 중요한 것은 그들이 결정합니다. 칠인위원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승랍이 삼사십 년 된 사람들인데 그들이 결정하고 책임을 집니다. 불교도 국가정책으로보다는 자발적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은해사 총무로 있을 때 말사주지회의에서 강순영 강사가 스님네들은 왜 그렇게 관리를 못하냐고 하니까. 스님네들은 국보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해요. 왜냐하면 문화재에 매이고 정부에 매여 심부름꾼 노릇을 하다가 수행도 못한다는 거죠. 실제 수행하고 있는 스님네들이나 불교의 신앙성, 사상성을 너무 무시해 버리고 관상용적인 것만 정부에서 밀어붙이니까 스님들과 부딪치는 거죠. 그 쪽은 관여를 안 하더군요.
주명덕
보호하기 위해 문화재로 지정하고, 인간문화재로 지정한 것이 오히려 나쁜 영향을 끼쳤습니다.
신영훈
저희 생각은 좀 다릅니다. 아마 지금도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절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툭 하면 국민관광단지를 만드는데, 대부분 큰절 밑에 있습니다. 거기에서 불고기를 구워 먹으니 냄새가 어디로 갑니까. 결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절이니까 절 근처에 짓고 싶다는 뜻이죠. 호텔도 그리로 오는데 절이라는 사원이 거기 없었으면 그게 거기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아직도 우린 의식 중심이 불교에 있죠. 도리 없이 생활권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스님들과 속인들에게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사찰 입구에 관람료라고 써 붙였어요. 그럼 들어가는 사람은 돈 내고 관람하러 들어가는 거예요. 돈 내고 들어가 내가 보는데 스님들이 막으면 안 되죠. 문화성이 빠지니까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스님들 스스로가 생각을 안 해요. 지나가면서 시비를 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관람료를 냈으니까 동물원에 가서 원숭이를 잡고 비스켓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게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관람료가 뭡니까. 당치도 않죠. 그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또 관람료를 징수해야 할 이유가 뭡니까. 관람료 받고, 시주 받고, 불사금 따로 받으시죠. 삼중, 사중으로 받는 돈이 다 어디로 갑니까. 신도들은 말은 안 해도 거기에 대한 반발이 있습니다. 심한 경우 발로 찹니다. 돈 내고 한번 차보는데 어떠냐고 합니다. 이런 문화적인 개념의 문제를 사원자체에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해결해야 할 겁니다. 그 사람들이 들어올 때 정리비를 내고 당연히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와서 부처님을 뵙고 즐기고 갈 수 있도록 해 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이 절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하는 안내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안내서가 있는 절을 한번 손꼽아 보세요. 전국의 이름 있는 절에서는 그런 것을 만들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왔다가 스님들과 트집 잡고 가도 까닭이 뭔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사전에”이런 절입니다”하는 예비 지식을 가지고 오라는 공표하면, 그런 짓을 하겠어요. 우리는 사원 경영에서 거의 그런 것이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외국인이 와도 들려 줄 수 없습니다. 안내판도 형편없는 것뿐이죠.
사회
해인사의 경우 국립공원이 들어와 돈은 많이 벌었지만 신앙적으로 형편없이 망가졌다는 얘기를 가끔 편집위원회에서도 했습니다. 자생력도 저지되는 결과를 낳았고, 포교도 하지 않아 해인사엔 신도가 없습니다. 사찰 수입원이 포교 활동을 해서 주어진다면 떳떳한 돈이 될 텐데, 신도의 신앙심에 의해서 보시 받는 게 아니라 관람료를 징수해, 관람객들이 스님들의 생활이나 북 치는 것을 구경하고 부처님 모셔 놓은 것을 구경하기 때문에 포교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런 부분을 짚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법등
관람료 징수는’문화재보호법’에 지정문화재는 보는 사람에게 관람하는 요금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까. 자의적인 일이 아니고 법적 근거로 하다 보니까 관람료라는 명칭이 존재하는데, 저 자신도 관광이니 관람이니 하는 표현을 아주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름부터’성지 참배’로 바꾸어야 한다고 행정관청에 얘기해 놓고 있습니다. 관광지는 스트레스를 푸는 곳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명칭 자체를 성지 참배로 바꾼다면 성보 유물이 있는 곳, 선사의 혼이 담겨 있는 곳을 참배한다는 의식으로 전환될 게 아니냐는 거죠. 문화재보호 차원에서도 국민에게 그런 의식을 심어 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입니다. 이것은 사찰 단독으로는 안 되고 정부 차원에서도 개념을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그 다음 관람료 문제인데, 사찰 단독으로 신도의 시주만 가지고는 사찰을 수호하기에 벅찹니다. 옛날엔 죽을 먹고 마당을 쓸고 밭을 매고 풀을 맸습니다. 제 경우 조석으로 죽을 먹고 점심마지에 밥을 한 번 먹고 거의 십 년을 살았습니다. 아침에 떨어진 홍시를 주어 놓았다가 먹기도 했는데, 지금 젊은 스님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케케묵은 옛날 얘기라고 합니다. 승려 의식도 변한 거죠. 그만큼 오늘날의 사찰도 물질이 필요한 거죠.
주명덕
관람료 징수 방법을 개선할 수 없나요.
법등
행정의 일선에서 보면 관람료는 필요합니다. 솔직한 얘기로 저희들 자질이 필요합니다. 성보 문화의 관리에 대한 의식 부족이죠. 사실, 우리 의식만 투철하면 밖에서 이질적인 것이 오더라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어요. 그런데 실제 우리들의 의지가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과 없이 수용하고, 한발 넘어 오히려 우리가 능동적으로 해 버리는 것도 있습니다. 국립공원을 지정해 놓고 관람료, 입장료를 받는데, 대통령 지시령으로 사찰문화재보수비로 삼십 퍼센트를 되어 있어요. 그런데 해인사와 법주사 두 군데만 삼십 퍼센트를 주고 나머지 일곱 군데는 십 퍼센트만 주고 있어요. 이 부분은 지자제가 실시되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을 법제로 만들려고 하는데, 법으로 안 되면’령’으로 해서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키려고 합니다. 공원관람료는 삼, 사십 퍼센트 인상하면서 사찰 관람료는 인상이 안 됩니다. 제가 행정기관에 이렇게 얘기합니다.”오늘날 국립공원의 주체가 사찰이고, 국립공원으로 되기까지의 여건 소성은 스님들이다. 스님네들이 만일 인건비, 보너스를 받는다면 오늘날 사찰 운영을 하지 못한다. 우리의 신분이 수도자 입장이어서 부대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으니까 가능한 것이지, 당신들이 운영하면 현재 예산의 다섯 배 이상은 들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산도 좋지만 주체는 사찰이 아니냐”하고요. 관람료를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인데, 지금은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명칭은’성지 참배’,’유적 참배’로 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주명덕
해인사의 경우, 비원처럼 시간제로 사람을 모아 스님들이 나와 해인사 경내를 돌게 하면 어떨까요.
사회
시도를 하다 못했는데, 앞으로도 긍정적 시각에서 연구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다음은 교화와 수행의 장소로서 사찰의 의미를 살리는 사찰 건축, 즉 전통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은 그것을 어떻게 진단하고 모색할 것인가 또 앞으로 사원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얘기해 보지요.
향적
제가 보기에는 다른 종교에 비해서 불교는 교화적, 신앙적인 면에서 시청각적으로 활용하기에 폭이 넓고 깊습니다. 구 내지 십 세기의 중국 돈황의 불상이나 벽화, 보살상들을 보면 천년이 지났어도 시공을 초월해 우리에게 거부 반응이 없거든요. 우리나라에 있는 사찰 건축의 대부분이 조선시대의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상 조선시대의 회화는 고려시대에 비해 뒤떨어졌습니다. 벽화는 예술적으로 와 닿은 다음 신앙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잘 안 되어 있습니다. 어떤 미대 교수는 만일 제가 주지 하면 벽화를 아주 현대인에게 와 닿을 수 있는 시청각 자료로 해 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불사에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당이나 명부전, 관음전, 지장전은 시각적인 신앙의 대상이니까 시청각 쪽으로 살리고, 스님들이 사는 곳은 전통과 옛 것을 조화시키는 쪽으로 국집하기 보다는 사찰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고 기본적으로 사는 데 편리하게 되었으면 합니다.
신영훈
아까, 오늘날의 새로운 사원을 유지하는 방법 가운데에 전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하는 방안이 나왔는데, 저는 옛날 삼국시대 사람들이 현명했다고 봅니다. 우선 회랑을 둘러 부처님을 모시는 일구역을 완벽하게 정돈시켜 놓고 요사체는 밖에 두었죠. 그 시대에 따라 적절한 변화를 가지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화 지역인지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신도가 가도 들어갈 수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그 동안 그렇게 흐트러 놓았는데,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문제입니다. 앞으로 되도록이면 중심 구역으로 집중시켜 놓아 불교 의식의 거행은 그 곳에서 하고,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는 곳은 따로 만들어서, 그것을 장차 이십일 세기 사원의 새로운 모델로 개념을 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을 논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주명덕
사찰이 빨리 블록을 형성화시켜 옛 전통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은 철저히 지키고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은 따로 있게 한다는 말씀입니까.
신영훈
법당을 비롯해 불교 의식을 거행하는 곳은 그 분위기대로 정리해 주고 스님들 생활하는 곳은 따로 떨어지게 해 그 앞에 교화 지역을 두자는 거죠. 불교 의식을 거행하는 곳은 엄중한 대로 남겨 두어야 이 다음 세월이 흘러도 옛날과 수미가 닿게 될 것이 아니냐는 거죠. 해인사나 직지사는 그것을 흩어 놓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업자득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큰 건물을 짓지 않았으면 지금 같은 혼란은 오지 않았지요.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신세대가 스님이 되어 들어왔을 때, 그 사람들이 지켜 나가야 할 규범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가 오늘날 우리의 과제입니다. 생활의 편리가 기능 위주로 된다고 해서 인간의 삶이 쾌적해지는 것만은 아니거든요. 주변에 있는 자연이나 생활과도 맞아야 하는 거지요. 요즘 서양식이 되었다고 해서 이런 좁은 방의 공간에 앉혀 놓고 좌선하라고 한다면 몇 시간을 견디겠습니까. 그런 문제는 경험한 사람들이 적어도 이런 공간은 안된다고 제시해 놓지 않으면 자기가 경험할 때까지 이 짓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단 말이죠. 법당이나 요사의 건축물에 대한 개념 정리는 필연적으로 해 두어야 합니다.
주명덕
큰 가람은 문제가 없는데 조그만 암자터가 능력 있는 주지 스님에 의해서 파괴되는 예가 있습니다.
법등
원력만 가지면 밖에 나가지 않고도 오는 사람만 포교해도 잠재력은 얼마든지 있다고 봅니다. 직지사의 경우 향경각에 다실을 만들어 비디오를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무의미하게 차만 마실 게 아니라 불경의 문구나 법구도 알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만세루 위 공간에 현대 시스템을 준비해, 일단 보고 싶은 분은 그 곳에 가 절의 역사를 듣고 가도록 준비할 겁니다.
신영훈
그런 작업이 무척 필요합니다.
주명덕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터가 궁궐터 아니면 절터, 묘지의 명당 자리인데, 절의 모든 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예술이 사찰 건축에 전부 집합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모든 예술은 종교적인 힘이 아니면 성으로 가요. 앞으로 우리나라 현대 예술이 더 발전하려면 절에서 방을 하나 내 놓고 먹고 놀면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온갖 사람들이 와서 나도 작품을 하나 남기겠다고 하면 그게 나의 전통이 되는 거죠 문화인들의 쉼터가 될 수 있는 곳은 명산의 명찰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향적
제가 해인사에 있을 때 콘도를 지어야 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에선 선진국이 되니까 시내 성당은 비어있는데, 산중에 있는 수도원엔 사람이 메어 터집니다. 자가용이 있고 여가가 있고 스트레스가 있기 때문이죠. 한국불교는 스님네들이 깎아 내리지만 않고 가만 있어도, 희망이 있어요. 선진국이 될 수록 사람들은 산중을 그리워합니다. 그 때에 대비해 방이 필요하고 큰절은 콘도가 필요해요. 자연 조건이나 신앙 공간은 좋은데 침식 공간이 나빠 신도들을 놓칩니다. 절에서 먹고 자야 기도도 하고 시주도 하고 싶은 겁니다.
법등
예전엔 조그만 방 하나에 두세 명씩 기거하며 서로를 경책했는데, 지금은 학인들 말고는 방을 하나씩 차지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것도 절이 커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죠
신형훈
문제는 그런 추세를 막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추세를 받아들였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가 개념 정리죠, 십 육 세기에 시작된 몽블랑의 옛 수도원엘 갔는데, 지금도 수사들이 울력을 하고 있더군요. 외부인은 절대 잠을 안 재우니까 주변에 여관이 많이 들어서 있어요. 아침 여덟 시에서 오후 다섯 시까지만 개방을 하는데, 우리와 다른 것이 있다면, 오후 다섯 시에서 한 시간 동안 그 수도원에서 배출한 인물에 대해 해설을 해요. 사람들은 집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원의 인물에 반하는 겁니다. 그 분들이 어떻게 수도하고 살아왔는지를 배우니까 사람들이 여관에서도 그런 생활을 해봅니다.
향적
제가 있던 수도원도 옆에 시청각 교실이 있었습니다.
신영훈
국보, 보물이 있는 사찰이여야 대접받는 절이 되어 스님들 스스로가 평가절하해 버렸습니다. 절을 어떤 스님이 어떻게 개창했는지도, 당신 앞의 주지가 누구였는지도 모릅니다. 맥이 끊어져 버렸어요. 사적지가 남아 있는 절이 몇 군데나 됩니까. 스님들을 보러 절에 가는데, 인맥의 흔적이 끊어져 버리니까 요즘은 집을 보러 절에 가는 꼴이 되었죠. 스스로 대접하지 않으면 남이 나를 대접해 주지 않거든요. 우리 불가의 약점은 바로 그 점인 것 같아요. 오히려 큰스님을 받들어 주어야 따라가기가 쉬운 법인데 요즘은 앞서 가면 칠려고 합니다.
사회
새로운 유형의 창조 방법으로서, 앞으로 우리가 생활 공간과 신앙의 중심으로서 어떻게 사원 건축을 조화롭게 설계하고 불사해야 할 것인지를 정리해 보지요.
향적
없는 사찰을 복원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사상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시대에 호흡할 수 없는 것을 재현함으로써 예산 낭비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스님들이”옛 것을 복원하겠다”는 데 에너지를 소비하고 신앙적, 교화적으로 와 닿지 않는 불사는 지양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해인사는 구광루가 욕계, 탑이 있는 곳이 색계, 법당 위가 무색계를 표현하여 삼계를 나타낸 것입니다. 축대의 높이가 그 세계에 맞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모두 파괴시켜 버렸습니다. 계단도 파괴되었고, 사찰 자체가 시청각적으로 신앙의 대상 세계라면, 그런 것을 살려야 하는데 있는 것도 파괴시키니 그게 문젭니다.
사회
사원 건축을 어떻게 형성하고 건축해야 신세대들이 찾았을 때 감동할 것인지, 신선생님께서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말씀해 주시죠.
신영훈
오늘날 전통 계승이 기법에 있는 것이지 형태를 본뜬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새로운 불사를 한 것 가운데에 가장 논의되고 있는 것이 대구 팔공산 약사여래불이라고 한다면, 이 약사여래불의 눈이 밑으로 내려와 있는 겁니다. 눈이 밑으로 내려와 있다고 하는 것은 실내 공간에서 반사 광선을 막으려는 것이죠. 대개 부처님이 눈을 반쯤 뜨고 있는 것은 우리 사원의 처마가 깊이 내려가 있기 때문에 빛이 전부 밑으로 들어오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눈이 떠지지가 않죠. 위에서 빛이 들어오게 되면 그림자 때문에 다 감아 버립니다. 약사여래불이 노천에서 직사광선을 받으면 평생 가야 눈 한번 뜨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오늘날 최고 수준의 사람들이 최대의 돈을 들여 이십 세기 한국의 문화를 집중해서 만든 것이 저런 하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자는 그것뿐이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선지식은 아무도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선지식이 관여했더라면 저런 일이 벌어지지 않죠. 눈 안 뜨는 부처님을 모셔서 무얼 한다는 얘깁니까. 앞으로도 계속해서 불사가 있을 텐데, 저런 식의 시행 착오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오늘날의 문화 의식이 중요합니다. 지금, 불교는 존재하지만 불교문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집을 어떻게 짓느냐 하는 것의 기초는 오늘의 문화 의식이 어디에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엔 선지식들이 그 지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지식인들이었거든요. 고려시대만 해도 스님들처럼 유식한 사람이 어디 있었습니까. 지식의 총집합체가 사원이었으니까, 저런 기가 막힌 작품들이 나왔던 것이죠. 그런 선지식들의 모임에서 그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면, 팔공산 약사여래불 조성에는 어떤 선지식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장차의 문화를 형성해 나가는 불교 잡지가 이제부터 갈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불교문화의 창달인데, 창달 없이 무슨 집을 지어도 늘 병신 집밖에 안 됩니다. 어떻게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느냐는 오늘날의 문화를 어떤 방법으로 창달시켜야 할 것인지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집을 어떤 모양으로 짓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화 의식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회
오늘 좌담회에선 전통사찰 건축에 대한 문제 제기만을 한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에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