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소’와 우리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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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박찬수
1999년 09월 211호
청흑색 편암의 간다라 불살을 본다. 파상모라 불리는 머리카락에 큰 눈과 높은 코 그리고 32상 80종호 가운데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귓불이 길게 늘어진 부처님 귀까지 잘생겼다 대부분 2세기에서 3세기에 이르는 이 유물들은 부처님의 전 생애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저 머릿 속에 남아있던 역사적인 인물이 그려진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청에 힘입어 표현된 것이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 몇 백 년이 지난 2세기 무렵의 간다라 지역은 마투라 지역과 더불어 최초의 불상이 만들어진 곳으로 인정 받고 있다. 동서 교통의 요충지라는 자연적인 조건 속에서 그리스문화의 영향과 불교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전까지는 그런 행위 자체가 인정 받지 못했다. 그래서 학자들이 간다라 시대 이전을 무불상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세기 무렵의 간다라 지역과 마투라 지역의 사람들은 역사적인 인물인 부처님을 종교적 이상형의 인물로 존경하기 시작하였다. 부처님이 발견한 진리의 가르침을 마음에 되새기면서 예배의 대상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렇듯 시대의 요청이란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형성된 부처님을 뵙고자 한 간절한 소망들이 불상이라는 하나의 형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간다라의 불상들이 1999년 서울에 와서 우리를 만나고 있다. 그리고 확인할 수 있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간다라지역의 특징도 확인하고, 불상들이 담고 있는 역사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불상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 불상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 장인의 한 사람으로서, 신심을 기울여 부처님 한 분을 조성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껴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담고 있는 우리 불상의 미소가 마음에 들어서 였다. 그리고 그 불상들의 미소를 그려 보면서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의 답답한 표정도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이렇게 간다라 미술을 대하면서 지금의 우리를 돌아볼 수 있었으니,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고 했던 것인가. 좁은 우물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자신과 남을 비교해 보고 다시 한번 자기의 위치를 알고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백제의 불상을 떠올려 본다. 흔히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의 모습을 머릿 속에 그려 본다. 숨겨진 미소도 아니고 경건한 미소도 아니다. 그렇다고 조용하지만 자비로 만족스러운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부처님의 어떤 특별한 표정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산마애불의 천진스럽고 환한 그 미소가 어쩌면 그다지도 우리네 마음을 닮았는지 모르겠다. 이런 느낌을 주는 웃음은 경주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에도 꽤 있다. 경주에 가면늘 볼 수 있는 심볼, 바로 영묘사지에서 출토된 지름 14센티미터의 얼굴무늬 수막새가 그것이다. 얼굴 전체에 미소를 머금은 그 기와에는 편안함이 담겨져 있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과 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토용들의 표정도 볼 때마다 우리에게 편안함과 웃음을 선사해 주는 그런 얼굴들이다.
이렇게 표정을 숨기지 않는 모습과 더불어 또 하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비록 일본에 있으나 우리 것으로 확인된 경도 광륭사의 목조반가사유상의 모습이다. 어느 실존 철학자는 이 유물을 보고 세계의 어떤 유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고 했다. 이상적인 모습과 종교적인 냄새가 가득 풍기는 그런 유물과는 달리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말이다. 얼굴에서 편안함이 느껴지며 우아하나 사치하지 않고, 정지한 듯 고요하지만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 같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이 유물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과연 그런 얼굴을 그려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장안의 길을 걸으면 가장 어려운 것은 마음가짐이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러운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다른 것도 아닌 부처님을 조성하는 불모로서 그 때마다 느껴지는 세상사의 혼란스러움이 마음을 가장 많이 흔들어 놓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번뇌와 갈등을 무너뜨리려고 또 얼마나 고생해야 하는가. 그런데 7세기에 조성되었다는 부처님의 상호를 보면 도대체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저런 얼굴을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문도 해 본다. 나라면 저런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다시 나는 또 다른 혼란을 느끼고 있다. 얼마 전 허술하게 만든 댐이 많은 비에 무너져 수해를 입은 사람들을 보며 사람들의 잘못으로 일어난 피해와 그 피해자들의 고통, 그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국가 최고의 원로들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욕설과 멋대로의 몸짓, 나라의 기쁜 날에 행해지는 사면이라는 사랑이 행위에 담겨진 수많은 사람들의 욕심 등이 고대의 유물과 더불어 함께 내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다.
과연 이들이 그림을 그려내고 조각을 한다면 어떤 얼굴과 미소를 담아낼 수 있을까. 13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표현했듯이 웃음을 머금은 그런 부처님 얼굴을 조각하고, 반가유상에 표현된 그 깊은 마음의 세계를 그려낼 수 있을까. 안 될 것이다. 절대로 안 된다고 본다. 마음을 다스리는 이도 하루 수천 번의 변화를 겪는데 하물며 남의 마음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안 보아도 뻔하다.
199년 우리의 얼굴과 마음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있다. 그래서 천 년 뒤의 우리 후손들은 7세기에 조성되었던 ‘백제의 미소’와 100년 현재를 사는 우리가 그려낸 ‘한국인의 미소’를 비교하며 그 마음을 생각해 볼 것이다.
‘새 천년 조직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 나는 이 위원회의 심볼과 관련하여 작업을 하였다. ‘새 천년을 움켜 잡은 손’을 그려내었다. 그런데 이 곳엔 얼굴이 없다. 그 얼굴은 물론 저마다 그려내는 것이지만 내가 생각했던 처음의 모습과 마음은 그 손에 담겨져 있다. 웃음을 머금은 얼굴도 아니고. 세상을 성실하게 사는 그래서 마음이 아름다운 이의 얼굴을 그 속에 담아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뒤에 나와 똑 같은 얼굴을 본 이와 더불어 차라도 한 잔하며 이야기를 나눈다면 좋으리라. 그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