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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산 백양사 주련과 편액(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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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글씨를 찾아서 - 조수현 1995년 02월 156호
노령산맥 줄기의 이 곳 장성 백양사는 예로부터 눈이 많이 내린다. 청정한 도량에 하얀 눈이 수북하니 더욱 청량하다. 도성스님에게 부탁 드린 만암스님 종헌지宗憲誌를 얻었다.
광제스님에게 문안드리니 귀한 책을 선물로 주며 주지 스님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추사가 백파스님 문하에서 드린 법호 가운데 유일하게 진본으로 남은 만암曼庵 필체를 친견하니 시공을 넘어 친히 뵙는 기분이었다. 또 나머지 법호는 모두 유실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천만다행으로 운문암 광제스님 방에 설두에게 준 법호가 판각되어 걸려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주지 스님 방에는 그것 뿐만 아니라 벽장 한쪽의 원교 이광사가 썼다는 ‘회승당會增堂’과 추사의 ‘강성여화江城如畵’ 현액도 필름에 담을수 있었다.
이 밖에도 스님 방에는 낯 익은 글씨 한 폭이 걸려 있었다. 원광대 서예과 초대 학과장을 역임한 최정균선생의 ‘강산여화江山如畵’였다. 이는 필시 축사, 소전으로 이어진 필흔이 금방본 강성여화의 풍과 흡사함이 이채롭다.
나는 사찰을 나와 곧바로 ‘운문암雲門庵’으로 향했다. 겨울산이지만 잘 닦여진 길은 눈이 치워져 있어 쉽게 올라 갈 수 있었다. 산자락 풍광이 한눈에 보이는 고요한 자리에, 당당하고 여유있게 자리한 암자가 보는 이로 하여금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암자에 도작하자 대구에서 온 십여 명의 보살님들과 함께 점심 공양을 끝내고 부조실 스님 방에 걸린 현액을 필름에 담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산내 암자 가운데 가장 오래 되었다는 ‘청류암淸流庵’으로 향했다.
백양사 입구 민박촌을 지나 한침을 오르니 미처 손이 닿지 앓는 감나무 아직도 빨간 감이 주렁주렁하고 인적 없는 그늘진 길에는 눈이 무릎까지 빠진다. 깊은 호흡으로 잠시 뒤에 적막한 암자에 도착하니 청연스님이 반갑게 맞는다. 암자의 주련과 현액을 필름에 담아 내려오니 하루가 짧기만 하다.
불교에는 수백 가지의 화두가 있다. 백양사입구에는 ‘만암대종사고불총림’도량 이라는 큰 석주가 있는데 그 밑에 “이 뭣고” 하는 화두가 쓰여 있다. 필자가 지난 달 도성스님의 안내에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한자 화두 ‘시심마是甚麽’를 직접 써 보았다.
대웅전 뒤에 세운 부처님 사리탑의 비명이다. 오백여 자에 이르는 글을 모두 추사 김정희의 행, 초를 집자하여 1924년에 세운 비이다. 이를 보아 그 무렵에 백양사를 비롯한 관내 사찰 스님들과 추사 사이에 오고간 추사의 서찰 문적이 그 만큼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집자이지만 실제로 쓴 것처럼 서체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주지 스님방에 간직된 추사가 쓴 ‘만암曼庵’ 법호와 ‘강성여화’ , 원교의 회승당 현액이 고풍스럽다. 반암 법호와 함께 적힌 글을 풀어 보았다.

하늘 꽃 눈은 물들이지 않았으나
사자는 자주 기지개 펴니
이 뜻을 전하는 이
불법을 뜻과 같이 펴리라.
天花不深獅子頻申轉
此義者如意法輪
이암伊闇(추사 별호)

‘운문암’은 노선사 서옹西翁 전 종정 스님이 계신 곳으로 육여 년 전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였다. 이 곳 백암산에서는 풍광이 가장 수려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운문암 현액은 서옹스님의 선필로 글자의 운치가 뛰어나고 격조 있다. 이 곳 광제 부조실 스님 방에 걸린 또 하나의 추사 법호 판각본인 ‘백벽百蘗-중국의 백장과 황벽스님’ 이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백파 문인이 종법을 모아 드날릴 것이니
대기, 대용 이 두 글자를 써서
설두 상인에게 주노라.
白門宗趣擧揚大機大用以此二字書
付雪寶上人.
승련勝蓮(추사 별호)

‘청류암’ 스님 방에 있는 병풍 글씨다. 만암 선사의 회갑을 맞아 염제 송태희가 크게 쓴 행서 글씨는 산내 암자의 겨울 정경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한 자 깊이 눈에서 풍년의 징후를 느끼고
아침에 이룸이 환회라네
尺雪驗豊徵
朝成心有喜

덧붙여서, 지난 일월호에 실린 광제匡濟스님의 오도송-四壁掛祖耳 獨出無方所-가운데 ‘괘掛’ 가 ‘봉封’으로
잘못 적혔음을 알려 드리면서 그를 바로 잡을 겸하여, 그 오도송을 필자가 한번 휘호해 보았다.

* 만앙종헌(1875~1957) 선사는 고창출신으로 속성은 여산 송씨이다. 네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열 살에 어머니 김해 김씨의 권유로 백양사로 출가한다. 열여섯 살에 구암사에서 ‘영호강백’과 운문암에서 ‘환응 탄영’에게 수학하여 교학을 이수한다.
양대 거장이 종헌의 법기를 알아보고 추사가 백파 선사에게 써준 마지막 법호인 ‘만암曼庵’을 주어 백양사 문손의 대미를 장식한다. 만암선사는 오랫동안 백양사 주지로 있으면서 오늘날의 사찰 규모로 갖추어 놓았다. 일제 때에는 조국 광복의 급선무는 인재 양성이라 생각하고 청류암에 ‘광성의숙’을 설립하여 당시 제일의 선불도량으로 키우고 오늘날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 전문학교 교장을 겸임한다. 만년에는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고 1957년 세수 여든 둘에 열반에 드신다.
만암큰스님 입적뒤 1960년 1월에 세운 ‘대종정만암대종사사리탑비’이다. 이 비의 명제는 당시 예술원 회원이요. 한국 서예계의 대가인 소전 손재형의 글씨로 특히 전서의 조형성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