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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흔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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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만우(시인) 1995년 02월 156호
얼마 전 일본 고베 근처를 강타한 지진으로 지구촌 전체가 흔들거렸다. 아직도 여진으로 인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예전의 평온을 거의 회복한 듯한 보도를 보고 흔들림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일본의 국민성이 오히려 세계를 흔들거리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위기를 기회 삼아 새롭게 탈바꿈하는 것은 일본뿐만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많은 집단과 개인이 유사한 생존 능력으로 지금까지 종種과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왔다. 우리나라도 지난 한해 수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잇달았지만 정권도 기업도 아무 탈 없이 유지되고 있지 않은가.
특히 일본은 이번 지진으로 많은 국보급 문화재가 손상되었다고 들었다. 수많은 인명과 재산이 피해를 당한 상황에서 몇몇 문화재 손실은 의미가 반감될 수도 있다. 인명은 그럴 수 없지만 다른 건물이나 도로 따위는 예전보다 더 훌륭하게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는 예전대로 복원이 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문화의 의미를 한 인간집단이 일체의 상황과의 교감을 통해 이룩한 생활양식의 총체라 정의한다면, 그 결과물인 문화유산의 망실은 수치로는 산출해 낼 수 없는 커다란 손실일 수 밖에 없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문화 유산이 있고 없음이 이니라 거기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삶의 메시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내는 정신적 포대가 문화재 속에 숨어 있다. 개인의 이기적인 생각의 표출이 아니라 자신을 없애고 없애 무아無我로서 세계에 회향한 걸작들이 오늘날의 유형, 무형의 문화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와 남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사상의 진통이 파괴 속에서도 창조의 망치 소리를 들리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번 지진 사태 뒤에 일본인들이 보여 준 질서 의식이라든지 다른 민족과의 협동 상황을 보면서 새로운 문화 유산의 탄생을 보는 느낌이다. 비록 몇 천 년 이어져 내려온 문화재 몇 점이 파괴되었더라도 서로 힘을 모아 난국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웃이라는 것, 가족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화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평소 일본의 국내 문제 가운데 하나인 재일 동포와의 관계 또한 새롭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파괴된 문화재 몇 점을 보상하고도 남을 큰 문화 유산으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