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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출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고뇌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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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5년 02월 156호
얼마전에 ‘레인맨’ 이란 영화를 보았다. 자폐증 환자와 정상인의 심리 상태를 그린 영화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폐증환자인 형은 동생과 헤어진 뒤 곧바로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자신만의 세계로 되돌아가버리지만, 정상인인 동생은 형과의 끈끈한 정 때문에 헤어짐을가슴아파하며 몇 번이나 다음만날 날을 기억시키면서 연연해 한다.
가끔삶이 고달프고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 정상인보다는 차라리 자폐증환자가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정싱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기에 겪어야 하는 마음의 고통을 잘 묘사하고 있었다. 영화를 본뒤, 벌 받을 생각이다 싶으면서도 생각 할 줄 아는 인간 이란 것이 슬퍼 며칠 동안 우울했다.
인도에서는 고대부터 인간의 존재는 고통이라 여겨 해탈을 구하려는 경향이 현저했다. 석가모니도 인도문화를 배경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은 이러한 관념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
석가모니의 생애에 대해 경전은 그를 신격화하여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성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석가모니가 성인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은 결과론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는 수행하여 깨달은 자가 되어서 성인의 대열에 끼인 것이지, 애초에 성인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만일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도인이었다면 불교는 우리와 무관한 종교가 되었을 것이다. 불교는 절대자를 믿는 종교가 아니라 ‘자각의 종교’이기 때문에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석가모니가 우리와 다른 성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었다면, 성인으로 태어나지 못한 우리는 영원히 깨딸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를 따름이다.
그러면 석가모니의 생애는 어떠했으며, 그의 출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석가모니의 생애는 먼저 ‘성도하기 전’과 ‘성도한 뒤’로 나누고, ‘성도하기 전’ 의 생애는 다시 ‘역사적 사실의 기록’과 ‘신격화된 전설’ 두 가지로 나누어서 고찰해 볼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성도하기 전의 생애 가운데에서 ‘역사적 사실의 기록’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석가모니의 출가 의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석가모니는 기원 전 5세기쯤 북인도의 히말라야 남쪽에 있는 키필라 바스투라는 한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 석가족 출신으로 성은 고타마 , 이름은 싯달타 라했고.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석가족 출신으로서 ‘모니’ 곧 성자가 되었다는 뜻에서 ‘석가모니’ 라 부르게 되었다.
싯달타는 태어난지 칠 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 부인에 의해 양육되었다. 소년 시절에는 왕족에 어울리는 교육을 받고, 모든면에서 비범한 재능을 발휘히며, 성장해서는 석가족의 처녀 야소다라를 왕비로 맞아 들여 라훌라라는 아들을 얼었다. 당시 태자의 생활은 석가족으로서는 최대의 영화와 즐거움을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사색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 태자가 일곱 살쯤되던 때, 농부가 밭 가는 것을 구경하다가 흙덩이 속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를 새가 날아와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약육 강식의 추한 세태를 개탄하고 염부수 나무 아래에 가서 조용히 명상했으며, 또 어느 날은 카필라성의 동, 남, 서, 북의 네 문으로 나가서 차례로 늙은사람, 병든 사람, 죽은 사람, 출가사문을 만나게 되자 인간의 존재를 고통이라 여기게 되었다. 그 뒤 태자는 모든 일에 대해 명상하는 버릇이 생겼고, 결국은 인생의 고통을 해결하라고 스물아홉살의 어느날 밤,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사문-구도자-이 되었으며, 육년 동안 각고의 수행 끝에 깨달음(成道)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성도하기 전까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뼈대이다. 지금까지는 석가모니가 불교의 교주라는 점을 감안하여 그의 삶을 무조건 좋게만 해석해서, 석가모니의 출가동기는 어릴 때부터 남달리 영민하여 인생에 대해 사색하기 좋아하고, 사물에 대한 자비심이 많기 때문에 인류 구제를 위해 왕족의 신분도 버리고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무조건 영민하고 자비심 많게 태어 났다고 해서 누구나 다 깨달은 자가 될 수 있는것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위인의 업적도 반드시 그 시대의 환경이나 문회적 배경이 함께 따라 주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석가모니가 인도라고 하는, 명상을 좋아하는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또는 그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거나, 석가족의 나라가 강대국의 압박에 고통 받는 약소국이 아니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섯달타의 삶을 좀 더 인간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그의 삶은 결코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우리 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왕후라는 좋은 혈통에 재능을 타고 났을 뿐아니라, 그에 어울리는 교육을 받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점만보면 보통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보다 나온 삶이었을지 모르지만, 싯달타가 어릴 때부터 명상하기를 좋아한 점과 이 명상으로인해 결국 출가 수행자가 되었음을 생각하면, 그의 천부적 재능과 좋은 교육은 외려 그 자신을 괴롭혔을수도 있다. 그가 어릴 때부터 명상을 좋아한 까닭은 타고난 재능과 좋은 교육의 영향이 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색의 습관이 생모의 죽음이라는 비통한 사건과 또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고통으로부터 해탈’ 이라는 인도적 관념을 흡수함으로서 태자의 세속의 행복은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생각된다.
그 뒤로 그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고뇌하게 되었고, 결국은 그 무렵 인도 청년들이 최고의 이상으로 삼던 두 가지 길, 곧 온 천하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느냐, 아니면 출가 수행자가 되어 정신 세계의 왕자가 되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후자외 길을 택하여, 인간이기에 겪어야 하는 근원적인 고통을 해결하려고 출가하였다고 짐작된다. 석가모니의 출가 의의는 따로 거창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겪어야 하는 현실 문제, 그것을 깨달았다고 하는 데에 바로 그 의의가 있다.
석가모니의 출가는 한 성인의 성스러운 일로 그치지 않고, 바로 우리 자신의 고뇌, 우리 자신의 출가를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