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참 역사, 지방사부터 가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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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조원래
1994년 11월 153호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처구니 없는 역사 공부를 해 왔고 자금도 그것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들 다신의 증조나 고조 할아버지의 행적은커녕 그들의 諱字휘자(이름 자)조차 모르고 살아가면서도, 신라 김유신 일가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로마 황제 아우구스티누스의 업적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오히려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역사는 멀리하고 먼 역사를 가까이하고 있는 셈이다. 반드시 알아야 할 직접적인 역사를 모르면서, 더러는 몰라도 좋을 불필요한 역사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역사에는 국가와 민족의 역사나 세계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집안의 역사도 있고 한 마을의 역사도 있다. 중앙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 역사도 있고, 권력자 중심의 통치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한 서린 질곡의 역사도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는 지배층 위주의 정치, 제도, 전쟁사가 대부분인 중앙의 역사만을 배워 왔다. 지방에서 일어난 생생한 백성의 역사에 대해서는 가르치지도 않았고 배운 일도 없었다. 곧 불구의 역사를 배우고 가르쳐 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국사는 잘 알면서도 자기 집안의 역사는 아는 것이 없다. 또 세계사는 공부하면서도 직계 조상들이 살아온 자기 고장의 역사는 배우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선 시대 국가적으로 시행된 향약鄕約은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마을의 수백 년 역사를 가진 친목계 조직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온 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던 최고 학부인 국자감이나 성균관에 대해서는, 거기에서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선발하여 무엇을 가르쳤는지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알면서도 조선 시대에 자기 고장에 엄연히 존재했던 양사재養士齋와 같은 교육 기관에 대해서는 그 이름조차 모른다. 이순신이나 권율의 활약에 대해서는 소상히 설명할 줄 알면서도 당시 자기 고장에서 직접 일본군과 싸우다가 순절한 동향의 의병장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심지어 집안의 선조 가운데 훌륭한 선비가 있어 지난날 한 지방의 후진 교육에 큰 자취를 남겼지만 그것을 알고 있는 후예들을 찾아보기 어려워 더욱 안타깝다. 이것은 말 할 것도 없이 모두가 잘못된 우리의 역사 교육 때문이다. 지방사의 무대인 지역 사회는 세계의 축소판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신분 집단의 인간이 살아 왔고, 그들이 이루어 낸 독특한 문화가 있다. 그래서 지방에는 국가나 세계와 같은 역사 형성의 기본 과정이 갖추어져 있고, 또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다양한 역사적 소산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지방 자치가 이루어질 경우에는 지방 정부가 중앙 정부의 부속 기구일 수 없는 것처럼 지방사는 국사나 세계사의 단순한 일부가 아니며 중앙사에 대한 하청도 아니다. 중앙사(국사)란 이른바 “나라의 역사” 또는“민족의 역사”라고 말하지만 그 대부분이 사실상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만의 역사이다. 이와 같은 지배층 위주의 국사에서 지방민의 생활과 그들의 활동상은 언제나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고, 설사 거기에 지방에 관한 것이 기술되었더라도 그것은 중앙 정국과 관련 있는것만 쓰여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지방사의 주인이었던 백성들은 방본邦本으로서 나라를 지탱한 근본이었고,⌜지봉유설芝峰類說⌟의 저자 이수광의 말대로 “백성은 어리석게 보이는 듯해도 속일 수가 없고 친하게 보이는 듯해도 그 누구도 이길 수가 없는 존재”였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지방사야말로 옳게는 국사의 주인이면서도 중앙 정치 권력의 억압에 깔려 무시되어 온 피지배계층, 그들의 모든 것이 담긴 “평민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지방사의 존재 가치가 있지만 아직도 지방사를 국사의 이류쯤으로, 또는 그것의 일부로 취급하고 있는 까닭은 우리 사학계의 방식 때문이라 하겠다.
그릇된 지방사 인식은 이 나라의 역사가 중앙집권적 왕권 국가로서 전 지역의 획일성과 동질성을 강요해 온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오늘 날에도 큰 차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중앙에 집중된 권력은 수도권 위주의 정치 행정을 펼침으로써 자연히 지방과 지방민을 소외시켜왔고, 이로 인해 지방은 중앙에 대한 종속관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육행정 역시 정치 권력의 파행적 구조와 결합되어 정치 권력에 못지 않은 폐해와 무정형의 난맥상을 보여 왔다. 그로 인한 우리의 교육은 현재 제도 교육 전반에 걸쳐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교육 풍토에서 지방사 교육이 이루어지기는커녕 국사 교육마저 정상적인 것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은 아직도 정부가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독점하고 있는 것부터 그 문제점이 적지 않은 것을 말해 준다. 이제 우리는 문민 체제의 지방자치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는 곧 지방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지방시대에 맞는 역사 교육을 모색할 단계에 와있음을 의미한다. 지방 문화에 대한 이해는 지방사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문화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시간의 영속성 위에서 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사 연구와 교육은 지방 시대가 해결해야 할 일차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경우에는 1930년에 이미 ‘향토교육연맹’이란 연구 단체를 조직하여 과학적인 향토사 연구와 교육을 시도해 왔고, 영국에서는 초등 교육 과정에서부터 대학 과정에 이르기 까지 지방사를 현행 정규 교과 과정에 넣어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이제부터 지역 사회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하고 아울러 지방사 교육을 교육 과정에 도입하여서 잘못된 역사 교육을 과감히 개혁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역사 학습의 목표는 역사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건전한 가치관을 지닌 민주 시민의 양성에 있다고 볼 때, 학습 경험의 직접성은 중앙 위주의 국사에서보다는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각 지방의 역사적 소산을 통하여 그 의의를 찾는 것이 좀더 자연스럽고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단순한 역사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활의 현장, 곧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역사를 보는 눈을 단련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는 것을 계기로 하여 지방의 교육위원회는 지방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하에 지역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화한 지방사 교재를 개발하여야 한다. 그렇게 한 다음 중학교 교과 과정에 있는 국사 교과를 지방사로 바꾸는 방안을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정상적인 지방사 교육 이란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국사교육의 기초 과정을 보강한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클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국사 교육은 다음 단계인 고등학교 과정에서 집중하는 것이 여러모로 타당하다고 본다. 지방사 교육의 효과는 학생들의 조상과 직결된 서민들의 역사를 직접 터득하게 할 뿐 아니라 향토의식을 고취 시키고 향토애를 심어 주어 지역적 긍지를 갖게 해 줄 것이다. 아울러 지역간의 건전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역적 잠재력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건전한 지역주의를 토대로한 전통 문화의 계승과 지방 문화의 창조는 지역 발전을 자극하고 나아가서는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될 것을 기대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역주의는 배타적이거나 편협한 지방색과는 전혀 그 성격을 달리하는 문화적 의미의 지역주의를 뜻하는 것이다.
조원래님은 1976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공주사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하였다.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국민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임란의 병장 김천일 연구⌟외 조선 후기 실학 관계와 임진왜란 관계에 대해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목포 해양대 교수를 거쳐 1983년부터 지금까지 순천대학교 인사대 교수로 있으며 박물관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