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출가자와 재가자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율장이야기 - 원철 1994년 10월 152호
만행길에 호법신장을 만나다
여름이 지나긴 했지만 늦더위가 여전히 그 기운을 떨칠 무렵이었다. 여름 한철 안거를 마친 젊은 비구가 만행을 하다가 어느 조그마한 도시를 지나게 되었다. 특히 그날 따라 날씨가 몹시 더웠는데, 마침 생맥주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한잔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율이 떠올랐다. 들어갈까 말까 잠시 머뭇머뭇거리다가”이렇게 더운 날 시원한 맥주 한잔쯤은 부처님도 이애하실 거야”하고 마음을 정리한 뒤 문을 밀치려는 순간이었다. 사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점잖은 거사님이 이를 보고는 공손하게 합장하면서”스님, 제가 이 지역 불교청년회 부회장입니다”하는 게 아닌가. 갑자기 미안하고 무안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순간 더위와 목마름이 싹 사라져 버렸다. 감사의 답례합장을 올렸다. 호법신장을 만난 셈이었다.
일만 생기면 부처님께 일러 바치다
계율 제정의 여러 가지 원인 가운데 재가자의 기여 또한 적지 않았다. 비구들이 잘못을 저지르기만 하면”부처님의 제자가 부끄러움과 두려움도 없이 저런 짓을 하였다. 겉으로는 내가 바른 법을 안다고 자칭하지만 행동이 이러하거늘, 어찌 바른 법이 있겠는가”하며 수근거려서 부처님 귀에 들어가게 하거나, 직접 부처님께 일러바치곤 하였다. 그러면 그 비구는 영락없이 부처님께 불려 가서”네가 한 일은 옳지 않다. 위의威儀가 아니요, 사문의 법이 아니요, 청정한 행동이 아니요, 사문의 법이 아니요, 청정한 행동이 아니요, 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행위가 아니므로 해야 할 바가 아니거늘 어찌하여 그런 짓을 하였느냐”하는 잔소리(?)를 꿇어앉아서 무릎이 저릴 때가지 들어야만 했다. 그러고는 그 잘못을 다른 비구와 후에 비구들이 또다시 범하지 않도록 하려고 계율 조항을 추가로 만드는 계기가 되곤 했다. 그 무렵 재가자들은 새로운 종교인 불교 교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종교 사회에서 신생 교단인 불교가 제자리를 잡으려면 출가자뿐만 아니라 재가자의 마음 자세 또한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재가자에 대한 부처님의 신임 또한 대단했다.
출가자의 허물을 재가자에게 말하지 말라
교단의 역사 속에서 재가자는 교단 외호를 위한 호법신장護法神將(불법을 지키고 보호해 주는 신)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인 수행을 병행하면서 해 온 일이다. 그래서 가끔 도인이 나오기도 했다. 유마거사, 방거사, 부설거사가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출가자의 의무 가운데에 하나가 재가자가 제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신심을 돋구어 주는 일이다. 그런데 율장을 열람하다 보면 가끔은 오히려 신심을 더 떨어뜨려 놓는 경우가 있다. 그 가운데에 하나가 출가자의 허물을 재가자에게 법문 거리로 삼는 일이다. 참으로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때로 출가자에게 허물이 있더라도 출가자끼리만 알아야 할 경우가 있다. 그것은 허물이 알려졌을 때에 재가자의 신심이 떨어지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이를 일러서 십송률에서는”만일 재가자들에게 출가자의 잘못을 말하면 그들로 하여금 불법을 믿고 공경하는 마음(信敬心)이 없어질 것이다. 재가자을 향하여 출가자의 잘못을 말하지 말 것이니 만일에 허물을 말하는 즉 이것은 법신法身을 무너뜨리는 것이다”하였다. 그래서 보조스님 역시”집안의 허물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不得揚於家醜)”고 가르쳤던 것이다. 제 얼굴에 침 뱉기인 셈이다. 재가자에게 출가자가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 당부 조항도 보인다. 범망경에는 아는 것 없이 또는 이익을 위해서 남의 스승이 되지 말 것이며, 삿된 법으로 교화하지 말라고 하였다. 또 사분률에는 많은 시주를 하더라도 지나치게 받지 말 것이며, 때 아닌 때에 마을이나 재가자의 집에 가지 말 것이며, 재가자의 법답지 못한 심부름을 해 주지 말 것(예를 들면 공항에서 양주를 대신 통관 시켜 주는 것 따위)도 아울러 말하고 있다.
여인과 더불어 앉아 있지 말라
재가자 역시 출가자에 대하여 지켜야 할 것이 범망경에 정리되어 있다. 먼저 법석法席이 열리는 곳은 반드시 찾아 다녀야 하며 그 법사에게 공양함을 의무로 하고 있다. 그리고 재가자가 자신의 지위나 재산, 학식 등을 믿고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교만한 생각을 가지는 것도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불상이나 경전 등이 법답지 못한 곳(예를 들면 고물상 따위)에 방치되어 있거나 버려져 있으면 값을 치루고서라도 반드시 구해 내어 청정한 곳으로 옮겨야 함도 함께 밝혀 놓고 있다. 그리고 2부정법二不定法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부처님 당시에 가류타이迦留陀夷 비구가 탁발을 갔다가 출가하기 전부터 알덩 친구의 부인인 재우바사齋優娑私의 집에 이르렀다. 단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을 이웃 여인이 보고는 부처님께 이 사실을 여쭌 데서 비롯된다. 그리하여”가려진 곳이거나(밀페된 곳) 가려지지 않는 곳(공개된 곳)에서 여인과 단둘이 앉아 법답지 못한 말을 하지 말라”는 조항이 만들어졌다. 이는 그 자체가 비법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하여 남들로 하여금 의심을 불러 일으키고, 또 신심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않고 참외 밭에서 짚신을 추스리지 않았다.
세간법에 호소하지 말라
교단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다 보면 살다 보면 사부대중간에 갈등이나 분쟁의 요소가 없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극단적인 상황이 되더라도 세간법에 호소하지는 말아야 한다. 사분률에는”원고가 되어 소송을 제기하지 말라”는 계율 항목이 나온다. 이를 범망경에서는 부연하여”너희 불자들이여! 좋은 마음으로 출가하였거늘 명예와 이익에 이끌려 비구, 비구니 보살계 제자를 마구 고발하고 구속하게 한다면, 이것은 마치 사자의 몸 속에 생긴 벌레가 스스로 사자의 살을 먹는 것과 같아서 불제자 스스로가 불법을 파괴하는 것이다”하여 교단 안의 일을 세간법에다 호소하는 그 자체가 불법을 파괴하는 행위임을 엄중하게 밝혀 놓고 있다. 구성원 개인보다는 교단 전체를 염두에 두는 것이 궁극적으로 사부대중 모두의 이익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부의 일은 자체의 역량으로 해결하는 것이 교단 자생 능력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재가자도 율장을 읽어야 한다
율장은 사실”대외비對外秘”이므로 비구, 비구니 외에는 읽지 못하게 되어 있다. 비구계 포살을 할 때에는 재가자는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멀리서 혹 들을까봐서 마이크까지 꺼 버린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웃지 못할 사태가 종종 벌어지곤 한다.”스님, 시간 나면 저 하고 둘이서 바닷가에 놀러 가요”,”스님은 수염을 기르면 멋있을 것 같으니 기르세요”,”스님 제가 지금 상담 드릴 것이 있는데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같이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하면 좋겠는데요”,”스님, 한철 동안 정진하시느라고 기운이 떨어졌을 것 같아 제가 영양식(고기를 말하는 것 같음)을 준비해 놓았습니다”하는 등등이다. 이 정도는 그런대로 보아 줄 만하다. 숫제 다 알고 있다는 듯 이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스님 술, 고기도 음식인데 뭐 어때요. 저는 다 이해합니다. 마음 놓고 드세요”이쯤 되면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모두 다 몰라서 일어나는 일로 믿고 싶다. 이는 출가자가 재가자에 대한 의무를 등한히 한 데서 생긴 문제이다. 오계나 주고 말 것이 아니라 재가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고 따라서 읽어야 하는 율장도 한 권 새로 묶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호법신장의 역할을 하는 데 지침서가 될 뿐더러 그로 인하여 정법도 또한 오래 머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