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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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이야기 - 원철
1994년 11월 153호
내용미입력종교적 환경은 늘 변한다.
나라마다 종교가 처한 환경은 차이가 많다. 인도는 정법을 근본으로 삼는 종교 국가인지라 교단이 주축이 되고 왕권이 이를 도와주는 형태를 취했다. 그래서 종교인인 바라문 계급이 더 높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 오면 양상이 달라진다. “넓은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다.(普天之下莫非玉土)”는 왕조 국가의 체제 속에서 종교 역시 그 속에 포함되는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출가자의 위치 또한 인도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출가자의 위상을 지키려는 수행자와 왕권의 권위를 확립하려는 국가 사이에 갈등이 초래될 수밖에 없었다. 그 첫 번째 충돌이 서로간의 의전儀典문제였다.
출가자도 마땅히 왕에게 절을 해야 한다.
동진東晋 때에 유빙劉氷은 당시 조정을 대표하여 출가자도 왕에게 예의를 다해 줄 것을 교단에 요구해 왔다. 인륜에 대한 도덕의 가르침인 예제禮制를 따라 임금과 신하의 질서를 밝히는 것이 중국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출가자 역시 백성의 일원이므로 마땅히 예의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불교를 믿거나 믿지 않거나 하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 문제에 불과하므로 개인적인 종교를 이유로 국가나 조정의 가치 체계를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출가자는 왕에게 절을 할 수 없다.
이에 대하여 교단 역시 입장 정리를 해야만 했다. 어쨌거나 출가자의 근본 계율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야 했다. 고심 끝에 답변서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혜원慧遠스님의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이다. 출가인은 세속 밖에서 노니는 사람이므로 그 생활은 세속을 완전히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출가인은 세속의 번뇌를 끊고 궁극의 도를 찾는다는 의미에서 삭발하고 승복을 입음으로써 그 의지를 밖으로 나타낸다. 궁극의 도를 체득한 출가인은 가족을 구함은 물론 그 은혜는 온 세계에 미친다. 그것은 왕이 다스리는 근본의 도와 일치한다. 따라서 사문은 부모의 은혜를 등지고 출가를 해도 불효가 아니며, 왕에게 절을 하지 않아도 불경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궁극의 도를 구하는 출가인은 왕에게 예배할 필요가 없다“
율장 정신과 공권력이 충돌하다
왕에게 절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단순히 예를 표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그 정도라면 조금도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이는 세간과 출세간, 불교와 유교,종교와 국가라는 이질적인 가치관의 충돌이라는 상징성이 얽힌 복잡한 사건인 것이다. 한마디로 율장 정신과 공권력의 충돌인 셈이다. 교단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는 비교적 율장 정신에 충실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단이 제자리를 벗어났을 때는 어김없이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이른바 법난法難이라는 사태가 그것이다. 북위北魏의 무제武帝, 북주北周의 무제武帝, 당나라의 무종武宗,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때에 가장 심했다. 이를 우리는 3무1종三武一宗의 법난이라고 부른다. 물론 여기에는 출가자의 세금과 병역 문제 등 경제 군사적 요인까지 겹쳐진 것이다.
방편으로 멀리까지 나가서 왕을 마중하다
제齊나라 승조僧稠스님은 문선제文宣帝가 절에 들릴 때마다 작은 방에 편안히 앉아 있을 뿐, 결코 영접하거나 전송하지 않았다. 왕이 크게 노하여 이번에도 나오지 않으면 왕명을 거역한 죄로 다스리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스님은 “차라리 하루만이라도 계율을 지키면서 살지언정 파계하고 평생을 살기를 원치 않는다” 하여 오히려 왕을 감동시켜 설득하였다.
사분율 에는 “대궐 안으로 드나들지 말라”하였으며, 범망경에는 “출가자의 법은 국왕에게 예배하지 아니하며, 부모에게도 절하지 아니하며, 일가친척을 공경하지 아니하며, 귀신을 예우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때로는 방편을 쓰기도 하였다. 부처님 당시 빈두로貧頭蘆 존자는 아라한으로 사부대중의 존경을 받았다. 그 때 우전왕優塼王도 또한 귀의하여 그의 법문을 들으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법문을 들으러 갈 때 마다 마중하지 않는 것은 의도적인 것이며, 이는 왕을 경멸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 하였다. 빈두로 존자는 왕의 이러한 마음을 신통력으로 꿰뚫어 보고 다음날은 일부러 멀리까지 마중을 나가서 극진한 예의를 차렸다. 제자들이 이상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었다. “이번에 우전왕이 왔을 때 내가 만일 그 전처럼 일어나지 않았다면 왕은 반드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갔을 것이다. 그러면 우전왕은 살생의 죄를 범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왕은 지옥에 떨어지는 과보를 받게 된다. 그것을 피하려고 내가 일어났던 것이다.”
세력가에게 아첨하지마라
왕궁에 출입하지 말라고 한 것은 대궐의 집이나 연못과 정원 들을 구경하러 다니는 출가자들이 더러 있어 가끔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다만 왕궁에 설법하러 가는 것은 예외였다. 그러나 그 때는 이십오조 가사를 착용하도록 되어 있다. 사미율의에서는 마을에 갔다가 관리의 행차를 만나거든 높고 낮은 이를 막론하고 길을 비켜 피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군대 행렬 따위도 구경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범망경에서는 나쁜 마음으로 나라의 사신이 되지 말 것이며, 세력가에 아첨하여 불법을 파괴하도록 부추기지 말 것이며, 재물이나 명예를 위하여 국왕이나 관리를 가까이 사귀어서 그 세력을 믿고 강제로 이익을 취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또 국가도 악법을 만들어서 불법佛法을 막지 말라면서 출가자 또한 국법도 잘 지키는 것을 구족계를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으로 두고 있다.
방편을 빙자한 잔재주는 법력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한국이라는 공간과 이십일 세기라는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이는 사회에 대한 종교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감소함과 함께 다 종교 국가라는 시대 상황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런데도 이 시대 불교의 자리 매김을 위해서라도 율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다. 전법이나 교화의 목적이 아닌 편의나 이권 그리고 세력을 위하여 재력가나 관리에게 접근하는 것은 출가자의 위의를 그르칠뿐더러 교단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율장에서는 “국왕에게 예배하지 말고 세력가에게 아첨하지 말라”는 대표적 조항을 통하여 그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불사를 진행하다가 부딪치는 경제, 행정의 애로는 수행과 기도를 통한 부처님 가피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 국법도 잘 지키라고 했으니 예비군 훈련에 잘 참여하여 예비군 관리대 직원들의 신심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한다. 주민등록지도 분명히 하여 일선 동, 면사무소 공무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아야 하며, 집배원 아저씨의 수고로움도 덜어 주어야 한다. 한국에 살고 있으면서 종교가 무엇보다도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고대 인도에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발은 땅에 디디고 살면서 머리는 천장 세계에 가 있는 신선적 사고도 문제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흐름에 영합하는 자본주의적인 사고는 더욱 곤란하다. 그런 비법非法들은 부처님 제자로서 우리들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또 다른 어리석음(無明)의 한 종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