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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효孝가 바로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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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여연 1994년 11월 153호
산문 속에 들어와 이십 년이 넘어 뒤돌아 보는 내 삶의 긴 역정, 어느 누구도 흘러온 제 삶의 여정의 회고는 그야말로 생 노 병 사 우비고뇌의 온갖 덩어리의 어찌 다 할 수 없는 풍랑의 바다 그 자체일 것이다. 나는 엊그제 팔순을 넘은 노모를 여위었다. 팔순 노모의 죽음이니 남들이 호상이라고 말해 주는 때에 더구나 출가한 사문이 속연의 얽힌 일 앞에 무슨 말이 있겠는가 만은 나는 감성의 티끌 얹힌 것 없이 슬프고 슬프다. 내가 산문 속에 들어간다고 결심하여 쪽지 한 장을 장롱 속에 남겨 둔 채 떠나던 그 날, 뒤늦게 알고 산발을 하여 이모와 기차역에 나와 내가 어느 열차에 탄지도 모른 채 플랫폼 난간을 잡고 오열하던 어머니의 흩어진 모습, 그 장면을 창 밖으로 내다보면서 떠나 온 나의 모진 불효는 아직도 쌩쌩한 얼음판이다. 떠나간 자의 무상한 영혼과 살아 남은 자의 영혼이 아득한 길 머리에서 아니 어머니와 아들, 아들과 어머니의 애끊는 인연의 고리 속에서 동산 양개 화상과 그 어머니의 슬픈 인연 그리고 유비와 그의 어머니를 떠 올라 본다.
알다시피 유비는 협협한 시골 누상촌에서 돗자리 짜다 팔면서 노모를 봉양했던 사람이다. 어느 날 장터에서 아름다운 차를 발견하고 노모를 생각하며 조상 대대로 내려온 값비싼 보검과 맞바꾸어 어머님께 바치는 것으로 삼국지는 시작된다. 노모께 올리고 싶은 차 한잔의 사랑, 그 따뜻한 효가 어디 유비에게만 있던가. 눈 내리는 겨울날 죽순을 먹고 싶다는 부모를 위해, 얼음 언 강에 잉어를 먹고 싶다는 어머니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중국의 옛 고사들 속에 불가사의한 자식들이 부모님께 올리는 효를 우리는 수없이 읽었다. 치문에 나오는 양개 화상의 사친서는 아마 나뿐 아니라 강당을 나온 수많은 스님들은 그 글귀에서 부모에 대한 간절함이 남아 있을 것이다. 눈 먼 어머님을 홀로 놔두고 도를 위해 출가하면서 남긴 간장이 끊는 양개스님의 편지. 도 그 노모는 출가한 아들을 찾아 중국 천지의 절을 찾아 헤메면서(발 뒷꿈치에 어머님만 아는 사마귀가 있었음)스님들의 발을 씻어 주던 피눈물 나는 모정의 인연, 그 앞에서 출가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할까. 출가한 사문은 세상 밖의 인연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고 옛 스님들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도 닦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효(사랑)는 덧없고 덧없는 것이어서 그럴까. 날로 거칠어지는 산문 안에서의 인연, 섞어도 우리가 태어났던 인연들은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출가에서 얻은 길을 어디에다 회향할 것인가.
세상이 마구 뒤엉키고 어그러지는 인간애의 갈등, 지존파가 저지른 메마른 세태. 그 밖의 살인 행각과 비리들 모두가 개개인이 효를 다하지 못하지 때문이다. 개개인 효(사랑)가 바로 서면 세상이 밝아지고 그 청량한 바람은 세상의 나무들을(인간들의 사랑) 살 찌울 덴데... 이미 땅의 숨결 속에 놓인 내 어머님의 영혼 앞에 올리지 못한 따뜻한 차 한 잔을 이제 나의 가까운 이웃들에게 솔불을 피워 차를 다리리다. 바람 앞에 흩날리는 낙엽의 빛깔로, 불꽃 위에 사라지는 나뭇잎의 향기로 모든 사람의 영혼에게 우리 모두 사랑의 차를 달이는 수행자가 되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