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할 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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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 효종
1992년 07월 125호
“있잖아요, 나도 할 말 있어요.”
여기는 가야산, 유명한 팔만대장경이 모셔져있는 해인사가 있는 곳. 본디 가야산 전체가 다 아름답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빼어난 곳이 홍류동 계곡입니다. 홍류동 계곡에는 잘생긴 바위들이 여기저기 모양 좋게 들어앉은 데다가 그 틈과 틈새 사이로 흐르는 물- 옥수라고 하지요 -이 또한 맑고도 아름다워 가히 선경을 방불케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저마다 탄성을 지르고 점잖은 사람들은 시 한수를 읊조리기도 했답니다.
바로 이곳에 사람들이 앉기 좋다 하여 이름이 ‘앉을바위’라고 하는 바위 하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앉을바위가 요즈음 무슨 심통이 났는지 글쎄 “있잖아요, 나도 할 말 있어요” 하고 나섰지 뭡니까?
왜 그런 걸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도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입니다.
앉을바위가 이렇듯이 심사가 틀어진 결정적인 일이 아마 그저께 일어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야흐로 때는 따뜻한 봄날! 겨우내 얼었던 땅덩어리가 온기를 되찾아 만물이 소생하는 때이지요. 가야산도 소나무 사이에 철쭉꽃이 흐드러지고 홍류동 계곡에 흐르는 물도 맑은 소리를 내게 되었답니다. 그 모습은 생기를 잃은 도시인들에게 신선한 삶의 생명력을 일깨워 주는 대자연의 조화이지요.
이때쯤이면 사람들은 홀린 듯이 너도나도 가야산에 찾아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자연의 신비한 조화를 만끽하러 오는 사람들이 정작 와서는 전혀 그런 태도를 갖지 못한다는 겁니다.
특히 이곳은 다른 산들과 또 틀려서, 우리나라 불교의 성지인 해인사가 있고, 그 안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물, 팔만대장경이 모셔져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가야산은 우리나라의 성지일 뿐더러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훌륭한 관광지이기도 합니다. 이런 곳이기 때문에 가야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산을 대하는 태도에 신경을 써서 점잖게 행동해야겠죠. 그런데 굳이 이곳만이 아니라 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산의 정취를 맛보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놀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날도 한 패의 놀이꾼들이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이곳에 왔던 것입니다. 이들은 가지고 온 음식들을 주욱 펴 놓고 먹어 가면서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확성기까지 틀어 놓으니 그 너른 가야산이 온통 그들의 안방이 된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가면서는 술에 취한 사람들이 늘어나서 난장판이 되어버렸습니다. 여기서 왁자지껄, 저기서 와그렁지장창, 저 건너서 싸움질, 이렇게 해야 사람들은 속이 시원해 지는가 봅니다.
그 가운데에 몇 사람이 이 앉을바위에 앉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이, 한 잔 마시게.”
“좋지.”
그들은 아직도 마셔야 할 술이 많이 남았는지 쉬지도 않고 주거니 받거니 잘도 마셔댔습니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입마저 잠시 잠깐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술잔 돌아가는 속도와 같이 점점 빨라졌습니다. 잘도 돌아갔습니다. 그러다가 바로 이 바위 이야기가 나왔던 것입니다.
“이 홍류동 계곡이 좋긴 좋아.”
“글쎄 말이야.”
“야, 저 바위 새로 흘러내리는 물 좀 봐. 얼마나 맑고 시원해 보이는지...”
“저 바위 좀 봐. 바위들이 미끈미끈하게 잘도 생겼어.”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바위는 뭐에 쓰면 좋을까?”
“이거? 이 바위는 위가 조금 넓적하지만 이 가운데 틈이 좀 벌어져서 별 쓸모가 없을 것 같군.”
“아니, 그래도 잘 다듬으면 무슨 조각품이라도 만들 수 있잖을까?”
“모르는 소리 말아. 내가 석수공장 사장 아닌가 말이야. 이 돌은 틈이 벌어져서 가져가 봐야 품만 많이 들지 별 재미가 없어.”
“그러면, 생긴 그대로 돌 신세밖에 안된다는 말이지?”
“그렇지. 혹 가져가 봐도 축대 쌓는 돌밖에 안 되겠어.”
그들은 앉을바위를 두고 자기들끼리 이리저리 돌려가며 별별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앉을바위가 발끈 화를 낸 것입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나를 보고 평생 가봐야 돌 신세를 면치 못한다고? 또, 가져가 봐야 축대 쌓는 돌밖에 안 되겠다고? 이 사람들이 해도해도 너무하는군! 에라!’
앉을바위가 화를 내자 갑자기 바위가 차가워졌습니다. 사람들은 바위가 갑자기 차가워지자 놀란 것 같았습니다.
“아니, 이 바위가 갑자기 왜 이렇게 차가워지지?”
“자기 얘기했다고 그런 것 아니야? 허허.”
“그럴지도 모르겠어.”
“가자고, 가!”
그들은 주섬주섬 먹을 것들을 챙기더니 바위 저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잠시 뒤에 그들은 모두 다시 관광버스를 타고 돌아갔습니다.
앉을바위는 분이 가시지 않아서 그들이 탄 버스에 대고 소리쳤던 것입니다.
“있잖아요, 나도 할 말 있다구요.”
앉을바위는 문득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이 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습니다. 흥분이 좀 가라앉자 앉을바위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위 밑을 흐르는 물과, 계곡을 스치는 바람과, 다른 바위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게 된 지도 벌써 천 년이 넘었구나. 그 오랜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보아 왔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신라 시대 끝 무렵에 뵙던 최치원 선생님이야. 최치원 선생님께서는 나를 퍽이나 예뻐해 주셨지.
달이 환하게 밝은 밤이면 저 위에 있는 그의 집에서 내게로 내려오셨어. 손에는 거문고를 들고 말이야. 내 위에 앉아 그는 달빛을 따라 거문고 가락을 뜯었단다. 달빛이 솔바람에 흔들리면 그의 거문고 가락도 흔들리고, 달빛이 고요하면 그의 가락도 잔잔해졌지. 달빛이 구름에 살짝 가리운 듯하면 거문고 가락도 살짝 숨은 듯이 사그라들고, 달빛이 구름 속에서 나오면 거문고 가락이 파도를 타듯이 소리를 높여 갔어.
그는 가야산을 벗 삼아 노래했고, 가야산의 뭇 생명들은 그를 사랑했어. 내가 그를 사랑한 것은 물론이지. 그가 거문고를 탈때면 나는 그의 모습을 쳐다보느라고 정신이 없었단다. 그가 내 위에 앉아 거문고를 탄다는 사실에 나는 황홀해서 어쩔 줄을 몰랐어. 그럴 때면 나는 내가 바위가 아닌 것 같았어. 살아 숨쉬는, 말을 알아듣는, 생명을 지닌 사람과 같았단 말이야.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에 나는 그의 일부였던 것 같아.
또 생각 나는 것이 있어. 최치원 선생님께서 저기 있는 ‘농산정’에서 제자를 가르친다고 하실 때는 나는 내가 움직일 수 없는 바위라는 사실이 너무나 한탄스러웠어. 움직일 수만 있다면 그의 가르침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안타까워했지. 그러나 한편으로생각하면 내가 언제까지나 이 자리를 지키면서 이리로 찾아오는 그를 볼수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나를 찾아준 사람이 그만은 아니었지. 더러 해인사 스님들이 이곳에 오실 때가 있었단다. 스님들은 해인사에 올라가실 때나 마을로 내려가실 때나 꼭 이 앉을바위에 앉아 쉬어 가셨단 말야. 흐르는 땀도 닦고, 흐트러졌던 마음도 가다듬으셨지. 바로 내 위에 앉아서.
스님들 이야기를 하자니까 잊어버릴 수 없는 스님 한 분이 생각나네. 아마도 출가하신 지 꽤나 오래되신 스님이셨을 거야.
어느날, 그 노스님이 바랑을 걸머메신 채로 이곳에 오셨어. 그 노스님게서는 내 위에 걸터앉아서 내 밑을 흐르는 홍류동 옥수를 한참 보시더니 ‘흑흑’ 우시는 것이었어. 스님이 울다니! 나는 그런 광경을 처음보았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 있길래 도를 많이 닦으신 노스님께서 저렇게 우시는 걸까? 내 가슴이 다 아파오더라구.
노스님은 한참 흐느껴 우시더니 길게 탄식을 하셨어.
‘아, 인생이란 것이 저렇게 옥수 흐르듯이 흘러가는 구나! 저 옥수는 흘러가 버리고 다음 옥수가 밀려오고, 또 그 옥수는 다음 옥수에 밀려 끝없이 흘러가는구나.
내 인생의 물은 어디쯤 흘러가 있는 걸까? 내 나이 이렇게 되도록 도를 닦았건만 아직도 도를 이루지 못했으니... 이 나이가 되도록 난 무엇을 했단 말인가?
아! 부처님이시여! 가련한 이 중생을 보살펴 주소서! 하루 빨리 도를 이룰 수있도록 도와 주소서!‘
아, 그랬구나. 그래서 노스님은 그토록 슬프게 우셨던 것이구나. 바로 오랜 세월 공을 들였는데도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한 것을 슬퍼하셨던 것이었어.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일지라도 더 노력해서 기필코 도를 이루어야겠다’ 고 다시 한번 굳센 다짐을 하시며 해인사 쪽으로 올라가시는 그 노스님의 야윈 등을 저녁 노을이 가볍게 다독여 주는 듯했단다.
나도 또한 그 노스님을 보내면서 하염없이 울었단다. 저렇듯이 나이 드신 스님께서도 아직 할 일이 남았노라고 굳은 다짐을 하시는데, 나는 움직일 수도 없으려니와 사람들처럼 도를 닦을 수도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가련한가 하고 말이야.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돌인 것을 퍽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어. 내가 돌이 아니라면 어찌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렇게 꼿꼿하니 이 자리에 있을 수가 있겠어. 사람의 목숨은 한낱 바람결 같지만 나는 무수한 세월을 끄덕없이 버티고 있잖아.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내가 보기엔 참으로 한심하단다. 천 년 세월 동안 내가 지켜본 그 어느 사람들보다도 생각이 짧고 감정적이고 제멋대로야. 옛사람들은 나뿐만 아니라 자연 속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이해했어.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했고, 실제로 하나였어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자연을 몰라. 모를 뿐더러 사람만이 제일이라고 뻐기고 자연을 함부로 대해. 심지어는 술에 취해서 서로 싸우다가 나한테 술병을 던지기도 하지.
아, 생각해 봐. 내 밑에는 맑은 옥수가 흐르고 있는데, 자기들이 화가 난다고 술병을 던지면 그 깨진 조각들이 어디로 떨어지겠어? 바로 이 옥수에 떨어진단 말이야. 그럼 나중에 자기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멱을 감을 때 발을 베이고,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리지 않겠느냐 말이야. 요즘 사람들은 도무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답답해 미치겠어.
오늘 그 사람들도 그래. 나는 이 계곡, 이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거야.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 이렇게 있는 것이 이 계곡의 아름다움에 한몫을 하는 건데, 뭘 옮겨 가고 축대를 쌓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어. 자연은 자연 그대로인 상태가 가장 좋은 거야.
얘들아, 오죽 답답하면 내가 이런 얘길 다 하겠니? 아무쪼록 내 얘기를 모두 다 가슴 깊이 새겨 주기 바래.“
물과 바람과 나뭇잎들은 잘 알았다는 듯이, 앉을바위의 이야기에 모두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도 앉을바위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