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문학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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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홍기삼
1992년 07월 125호
문학 분야에서 삼국유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때 먼저 주목해야 할 문제는 이 책의 제목에 대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거니와, 삼국유사는 매우 복합적인 기술 방식과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삼국유사는 참으로 많은 분야의 여러 학자들이 줄기차게 관심을 보여 왔다. 게다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저작물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더해진다.
그런데 제목에서 삼국三國은 고구려, 백제, 신라라고 하면 유사遺事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遺란 누락된 것, 나머지, 보완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면 사事란 무엇을 뜻하는가. 아마도 사事란 사실, 사건, 이야기 등을 뜻할 것인데, 그 가운데 이야기라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삼국유사는 문학적 담론 양식인 서사敍事나 서사물敍事物의 범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육당의 글은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遺事라 함은 正史에 遺漏된 瑣雜한 사실을 의미하는 者 ㅣ라. 支那에 잇서 書名上의 용례로 보건대 西京雜記의 雜記, 世話新語, 大唐新語의 新語, 기타 雜事, 雜錄, 漫錄, 野錄, 舊聞, 瑣聞 등과 한가지 一代 혹은 一事의 細故를 記載하는 者의 例稱이니 開元天寶遺事가 長安에 잇는 民間所傳의 唐玄宗時軼聞을 敍述하고(중략)後의 淸四庫全書에는 開元天寶遺事는 子部小說家類雜事之屬에 編入하고 餘의 諸子는 史部雜史類에 隷屬하니 言하건대 시방 新聞의 雜報나 事件의 漫錄 가튼 것을 모은 書類로 보면 可할지니라.
최남선, “삼국유사 해제” 중에서
앞 글의 뜻을 다시 요약해 보면, 첫째, 유사란 정사에서 누락된 잡다한 사실을 의미한다. 둘째, 중국 책 제목에서 사용된 예와 비교해 보면 잡기, 잡사, 만록들과 유사하다. 셋째, 이런 것들은 통시적 역사 기술 양식이 아니라 한 시대 또는 한 사건의 세세한 연고를 기술하는 방식이다. 넷째, 가령 중국의 개원천보유사라는 책은 당현종 때의 누락된 이야기들이 민간에 전하고 있는 것을 찾아 채록한 것인데 뒷날 이 책을 청사고전서에서는 소설가류잡사지속에 분류해 넣었다. 다섯째, 유사를 오늘의 관점으로 보면 신문의 잡다한 보도, 특히 사건 기사 같은 종류로 볼 수있다.
육당六堂은 우선 이와 같이 유사가 정사에서 누락된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아닌게 아니라 일연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삼국, 곧 고구려, 백제, 신라에 머물고 있지 않다. 그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가서 고조선, 위만조선, 마한 등을 다루고 가락, 발해,후삼국, 고려 등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일연의 의도는 분명히 삼국사기에 대응해서 ‘그 책에서 누락된 사실’을 다루겠다는 의도 때문에 많은 나라를 다루면서도 삼국유사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기와 유사의 차이는 정사와 야사의 차이가 아니다. 일연은 김부식이 일부러 다루지 않거나 누락시킨 것, 다루긴 하였으되 해석을 달리한 것들을 찾아 의도적으로 별개의 장르와 체계를 만든 것이다.
또한 유사는 사기가 누락시킨 것만 골라 편집한 저작물도 아니다. 그렇다면 두 책에 같은 내용이 중복되는 일이 없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다만 해석상의 편차만이 나타날 뿐이다.
그러면 사기와 유사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 학자들이 주목한 대로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는 기본적인 관점의 차이이며 불교적 세계 인식과 유교적 합리주의의 차이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차이는 기술 양식의 문제로 보인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일연은 유사를 기술하면서 통사적 기술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부분에다 설화의 독립성과 서사적 완결성을 추구하는 형식을 철저하게 취했다. 그것은 역사 기술 양식과 크게 다른 문학적 서사적 기술 방식이다.
문학적 담론 양식으로서 서사(Narrative)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범인류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제랄드 프랭스가 그의 대표적 저서인 「서사학(Narratology)」에서 서사물에 대해서 “이와 같이 범인류적이고 무한한 다양성을 가진 서사문은 현실 또는 허구의 사건과 상황들을 하나의 시간 연속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고 정의를 내렸듯이 서사문은 인류 사회가 가지는 보편적 표현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유사 역시 현실적으로 실재했던 사건들과 허구적인 사건 또는 상황들이 혼재되어 있는데, 그 사건들은 ‘하나의 시간 연속’이라는 단위에 의해 독립된 양상을 나타내는 신화와 전설등 설화적 서사물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다.
삼국유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논거의 대부분은 일단 이 책을 역사서라는 관점에 묶어두고, 역사 기술물의 범주 안에서 허황하다든지 황탄荒誕한 설이 많다든지 하는 식으로 깎아 내린다. 십팔세기의 안정복安鼎福, 이규경李圭景 등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견해는 오늘날까지도 주로 사학적으로 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서 꽤 많이 산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나 견해는 전적으로 저자의 찬술 의도와 저술 목적을 무시한 결과이거나 책의 내용을 허심탄회하게 수용하는 객관적 이해 능력의 결핍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유사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서술하여 말한다. 대체로 옛 성인들은 예와 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과 의로 가르침을 베푸는 데에서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연은 유교 최대의 덕목인 예악인의만이 아니라 국가와 제왕의 탄생에 따르는 괴력난신, 곧 상도常道를 벗어난 신이한 사실들이 명백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이어서 역설한다. 그러므로 유사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서는 성립되지 않지만 역사적 사실로만 보아서는 이해되는 내용이 아니다. 책의 서두에서부터 저자 자신이 결코 정상적인 의미의 역사서를 쓰려는 것이 아니라 괴력난신에 대해서 기술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였는데도 굳이 역사서로 전제한 뒤 이 책이 역사서로서 많은 결점을 갖는다고 뒤집어 씌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유사라는 것의 장르적 개념도 그러하거니와 괴력난신이라는 것이 필경 의미하는 신화, 전설, 민담 등의 장르적 관련은 이 책 자체가 역사보다 문학에 가깝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많은 신화와 전설이 수록되어 있으나 민담 종류(가령 독일식 개념으로 Marchen이나 일본식 개념인 석화昔話 등)은 별로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일연은 김부식과 달리, 우리 민족이 중국과 근원적으로 다른 발생 과정을 거쳐 왔다는 점을 주장하려 했고, 유교적 합리주의자들이 견지하고 있는 중국 편향주의와 함께 일상의 가치만을 고집하는 답답한 세계 인식의 태도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자 했다. 그런 이유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되 민족의 독자적 형성 과정을 신화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개인의 문제는 전설의 영역에서 다루어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Marchen이나 석화와 같은 옛날 이야기 종류나 민담류는 이 저자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연이 쓰려고 했던 것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독자성과 종교적 세계 인식의 결합이라는 과제를 설화 형식으로 기술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유사에는 열네 수首의 향가와 여러 편의 한시가 수록되어 있다. 향가와 한시들은 우리 고대 문학의 감수성과 상상력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우리 시문학의 고대적 원천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사의 자랑스런 유산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만일 이 열네 수의 고대 시가마저도 현존하지 못했다면 우리 문학사와 문학적 전통이 얼마나 왜소하게 축소될 것인지는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또한 유사에는 많은 전기 문학적 자료들로 가득 차 있다. 때로는 전설의 형태를 띄어서 전기적 사실들이 설화의 형태로 변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참작해 볼 만한 전기문학적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신화에서 설화로, 다시 소설적 제재나 모티브로 끊임없이 발전 변용되어 온 한편, 향가는 우리 문학사의 전범적인 서정시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시문학의 원천이 되어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유사에 수록된 서사 문학과 시문학이 우리나라 문학 전반에 끼친 영향은 실로 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육당의 글에서도 이미 보았듯이, 삼국유사 자체가 하나의 문학적 장르인 서사문학류에 속하고 그 수록 내용 역시 여러 가지 문학 양식을 담고 있다. 유사의 장르적 분류는 분명히 그렇지만 수록된 내용은, 역사학, 종교학, 고고학, 신화학, 민속학, 언어학, 씨족학 등 여러 분야와 관련있다. 이와 같이 유사의 기술 형식과 내용이 여러 학문 분야와 관련이 있는데도, 삼국유사가 마치 자기들의 분야만을 위해 기술된 저작물인 양 논의의 폭을 좁히는 이유도 희귀성이라는 사료적 가치 때문만이 아니라 기술 내용이 스스로 확보하고 있는 가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문학적 의의를 밝히는 일도 난제 가운데 난제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그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기술 내용 사이의 상호 관계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불교와 역사 같은 여러 학문과 모든 문학 분야에 대한 지적 토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고대 정신사와 문화사의 박물지이고 우리 민족문학의 정신적 탈의장이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문학의 원초적 질료를 두루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문학적 상상력과 민족 정서가 어떻게 형성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