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각국사 일연의 불교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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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상영
1992년 07월 125호
1.서언
일연은 우리에게 삼국유사의 저자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는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우리의 고대 역사, 사상, 사회, 문화, 언어 등 모든 분야의 소중한 자료를 담고 있는 저술이다. 따라서 일연에 대한 관심도 삼국유사의 저자라는 면이 지나치게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연은 삼국유사의 저자이기 앞서 고려 후기에 국사까지 지낼 만큼 뛰어난 선승禪僧으로서 불교사에 비중이 대단히 큰 인물이었다. 일연의 비문에는 삼국유사가 그의 저술이라는 사실조차 명기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당시에는 삼국유사의 저자라는 것보다 평생을 선승으로 살다 간 점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삼국유사의 저자로서가 아닌 선승으로서의 생애와 사상을 정리하는 작업은 일연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리고 그런 작업은 삼국유사의 찬술 배경과 의도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와서 일연의 불교 사상에 주목한 연구 몇 편이 발표되고 있다. 그의 많은 저술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최근의 연구가 일연의 불교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는 이들 연구를 바탕으로 일연의 불교 사상을 개략적으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2. 저술을 통해 본 일연의 불교사상
일연의 사상은 여러 종류에 이르는 그의 저술에 담겨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존하는 그의 저술은 단 한 종류에 불과하며, 그것도 직접적인 저술이라기 보다는 편저한 내용이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먼저 일연의 비를 통해 알 수 있는 저술 목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일연이 입적하고 나서 육 년이 지난 1295년에 세워진 일연비에는 일연이 남긴 저술로「어록語錄」2권,「게송잡저偈頌雜著」3권,「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2권,「조파도祖派圖」2권,「대장수지록大臧須知錄」3권,「제승법수諸乘法數」7권,「조정사원祖庭事苑」30권,「선문염송사원禪門拈頌事苑」30권 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삼국유사」는 빠져 있는데,「삼국유사」5권까지 합치면 9종 84권에 이르는 저술을 남긴 셈이다. 이들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삼국유사」와「중편조동오위」두 종류뿐이다.
「중편조동오위」는 일연이 1256년 부터「조동오위」의 보완 작업을 시작하여 1260년에 초간한 것으로, 근래에 민영규 선생이 일본 경도대에서 발굴하여 소개함으로써 학계에 알려진 자료이다.「조동오위」는 조동종의 중심 사상을 담고 있는 저술로, 일연이 이 자료를 편찬하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의 선사상이 조동선에 가까웠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지만,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어려운 상태이다. 일연의 다른 저술이 현존하지 않는 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그의 사상 자체가 어느 한 곳에 치우친 특성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같은 점은 비록 저술명만 놓고 보더라도 짐작이 가능하다. 곧「대장수지록」「제승법수」「조정사원」등은 일종의 사전적 성향이 강한 저술로, 교와 선을 총괄한 종합적 집필 의도가 강하게 엿보인다. 실제로 일연의 비문에는 ‘선열禪悅 이외에 대장경을 두루 열람하였고, 제가諸家의 장章, 소疏와 유서儒書 및 백가百家를 관통했다’ 는 기록이 있어 그의 폭넓었던 사상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따라서 그의 사상적 성향이 조동선이나 다른 한 유파의 사상에 천착하였을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한다.
또한 일연의 선사상 자체에 대해서도 특별한 종파에 국한해서 이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연은, 그의 비문에 “제가의 의심되는 내용을 모두 판별해 주었다”고 표현되어 있듯이, 당대 선종계에서 상당한 위치에 올라 있는 고승이었다. 반면에 그는 1249년부터 약 십여 년 동안 대장경 간행 사업에도 직접 관여하였으며, 1268년에는 대장경 낙성법회落成法會를 주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부분은 그가 간화선적인 성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되겠으나 구체적으로 어느 종파적 사상을 견지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한편 일부에서는 일연이「선문염송사사원」을 저술했다는 사실과 그의 비문에 들어있는 ‘멀리 목우화상牧牛和尙(지눌知訥을 말함)의 법을 계승했다’는 구절로 그가 수선사修禪社 계통에 속하는 사상을 지녔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일연은 분명 가지산문迦智山門에 속한 선승이었으며, 비문의 구절을 있는 그대로 믿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여기에서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할 수는 없겠지만 여하튼 이 문제는 당시 불교사의 전개 과정과도 밀접하게 관련있는 과제라고 판단된다.
앞에서 말한 저술 이외에 「어록」「게송잡저」등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어떠한 추측도 불가능하다. 이들 저술이 일연의 불교 사상을 접하는 데 가장 적절한 자료임에는 분명하지만 몇 구절이라도 전하는 바가 없어 아쉬움만 더할 뿐이다.
3. 삼국유사에 나타난 일연의 불교 사상
삼국유사의 체계와 내용에 대한 사학사적 연구는 이미 꽤 많이 축적되어 있다. 이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삼국유사를 역사서나 하나의 설화집인 문학서로 보는 견해가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불교적인 측면만을 다룬 불교사서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삼국유사를 어떤 성격의 저술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처럼 다른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 찬술 의도에 일연의 불교 사상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필자는 삼국유사에 투영된 일연의 불교 사상은 철저하게 중생 그 자체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런 점은 먼저 단군신화를 수록한 집필 의도에서 나타난다. 곧 일연은 몽고군의 칩입으로 시달리고 있던 민중들에게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했으며 그런 의도가 단군신화의 수록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의 개국 시조로 받들어지고 있는 단군은 이와 같이 승려의 길을 걷고 있던 일연의 자비심에 의해 비로소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삼국유사의 곳곳에는 노비들의 생활상과 노비가 출가 수행을 한 뒤 왕생하는 내용들이 풍부하게 실려 있다. 이 또한 천민들에 대한 인간적 애착과 불교적 평등 사상이 작용한 결과로 보면 일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찬술자의 의도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밖에도 14수에 이르는 향가의 채록사실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일반 민중들의 삶에 대한 일연의 열정은 삼국유사 곳곳에서 얼마든지 나타난다. 특히 효선孝善편을 따로 설정하여 다채로운 사실을 기록해 놓은 점도 민간에서 중시하던 효윤리를 불교와 융합시키려는 의도가 작용한 부분으로 주목된다. 비록 간접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처럼 삼국유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일연의 불교 사상에 접근해 가는 태도는 앞으로도 꾸준하게 지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4. 결어
이상에서 일연의 저술 목록과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그의 불교 사상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최근 일연의 화엄 사상에 주목한 연구도 발표된 바 있으나 여기서는 선사상적인 측면에 치중하여 보았다. 일연의 선 사상은 역시 내용이 전해지지 않는 「조파도」라는 저술 속에서 충분히 드러났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 또한 추측에 그치고 마는 아쉬움이 있다.
다만 앞으로 「능엄경 환해環解 산보기刪補記」라는 자료에 대해 학계의 관심이 모아질 것 같아 기대를 갖게 한다. 이 자료에 첨부되어 있는 통방通妨은 보환普幻이 산보기를 편찬한 뒤 일연에게 하나의 교감을 부탁하고 그에 따른 일연의 견해를 일부 넣은 소중한 자료이다. 이에 대해서는 채상식 교수 등이 주목한 뒤 별다른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다행히 월운스님께서 오는 7월 9일 개최될 ‘일연과 삼국유사’ 세미나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일연의 선사상을 밝혀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