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영웅난다는 말처럼 고려 말 조선조 초기는 수많은 충신과 영웅호걸이 역사의 한 장을 장엄하게 장식했던 시대이다.
특히 고대의 불교 수행 방식을 지양하고 새로운 불교 사상의 창출을 활발하게 모색하던 불교계도 걸출한 선승들을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육조 혜능의 정맥을 이어 간화선을 주장하는 임제종의 석옥청공石屋淸珙의 법을 계승한 태고 보우, 평산처림平山處林의 가르침을 전수한 나옹 혜근스님을 비롯해서 수많은 선승이 있었다. 그러나 백운경한白雲景閑의 천연무작天然無作ㅇ한 선풍은 걸출한 인물들이 만드는 역사의 숲에 가리워 잘 보이지 않는다.
스님은 고려 말 충렬왕 2년(1298) 전라도 고부군에서 태어나 일찍 출가하여 제방을 두루 편력하며 수학하고 나서 중국에 건너가 석옥청공의 법을 이었다.
거짓 얼굴을 하고 이름을 취하지 않는 스님의 수행가풍 때문에 스님의 삶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법어집에 ‘모든 대지가 해탈문이라. 들고 들고 또 들어가도 안이 없고, 나고 나고 또 나가도 밖이 없거늘, 이 안에 이르러 무엇을 불러서 삼문三門이라 하는가’라는 법문이 있어 스님의 사상을 짐작케 한다.
나옹과 보우처럼 간화선을 지도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체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선을 주장하였으니, 그것은 무심無心과 무념無念과 진종眞宗과 무상無上이다.
공민왕 23년(1374) 입적하며 다음과 같은 임종게를 남겼다.
인생 칠십의 회유함이여 77로 옴이 77년을 감이라.
곳곳이 모두 돌아가는 길이요, 천지가 고향인데
무슨 진리의 배를 타려 하리요.
달리 고향에 가려고 하나 본디 공으로 쫓아온 심신이어늘
가서 묻힐 땅 그 어디가 필요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