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 성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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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장채향
1992년 07월 125호
바른 삶, 도덕적인 삶으로 다가가려는 이들은 그대로 모두 부처님 제자이다. 불교의 목표는 불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에 있으며, 부처님 법이 번성하는 것은 사람들 각자가 참가치를 찾아 내고 한계를 극복하여 발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삶과 사고 방식을 전환할 수 있음은 이미 부처님께서 실증해 놓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가능성을 가진 자신을 믿는다는 뜻이며, 내재된 자신의 부처님을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재된 자신의 부처님, 이것을 찾고 또 믿으려고 이름 모를 숱한 행자들이 자유 속에 구속되어 갔고, 많은 포교사들이 중생들을 대면해 왔다.
성일스님. 그는 한 생을 늦추더라도 자기 한 몸 ‘자신의 부처님을 찾는 일’에 도움이 되고자 서원한 사람이다. 포교 일선에서 개인의 성장 척도야 말로 곧 불교의 발전임을 가장 절실히 느끼고 있는 성일스님을 만났다. 무엇이 그를, 이 한 생을 늦추어 살아가도록 하는가. 지혜와 복덕 때문인가. 중생의 고에 대한 연정 때문인가. 그의 상좌는 상투적인 대답은 거절한다는 기자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아무래도 우리 스님은 포교를 위해 나투신 보살님 같아요” 한다.
열 여덟 살에 출가하여 부처님 사랑하심이 한결같아 오롯이 수행의 길만 일삼던 승방의 니승尼僧. 성일 스님이 시정 사람들과 깊은 만남을 갖게 된 것은 수원교도소 법문을 시작하고서이다. “그날 생전 처음으로 찬불가라는 것을 들었어요. 우렁찬 합창으로 울려퍼지는 그 소리가 어찌나 듣기 좋던지...”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때부터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수감자에게 참회의 편지를 받았다. 그래 생각을 내었다. 불교 교육은 어릴때부터 해야 하며, 자신은 이 일에 한 몸을 바치기로. 참으로 단순한 동기 속에 속스런 의업意業 덩어리 하나가 내려앉는 소리를 듣는다. 화엄경에서든가. 바닷물의 맛은 일미一味라는 구절이 있다. 바다 깊은 곳의 물맛이나 중간쯤 되는 곳의 물맛, 그리고 파도의 물맛은 다 같다고 했듯이, 스님의 포교 활동은 그 옛날의 수행과 모양은 다르지만 그 정갈함은 다르지 않은 듯 하다. “포교가 자기 수행없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경험이 없이 무엇을 포교할 수 있습니까. 교리를 머리나 입으로만 한다고 포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불교학자의 법문은 왜 설득력이 약할까요. 결국 감동의 전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도와 수행이 바탕에 깔리지 않은 포교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포교란 다양한 공부거리의 집합체이므로 어쩌면 여느 수행법보다 힘들는지도 모른다. 옛 선사들이 함부로 법을 얘기하지 않았듯이. “부처님께서도 포교를 중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전도 부촉하시기를, ‘전도를 하되 무리지어 한곳으로 가지 말라’ 고까지 하였습니다. 무리지어 한곳으로 가면 그곳만 전도하지만 각각 흩어지면 그만큼 폭넓게 전도하니까요. 사실 신도 없는 불교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인도 성지 순례 때 이미 불교의 참모습이 사라졌음을 보고는 한참을 울었다고 하시는 성일스님. 성지는 남아있되 성자가 없고, 교리는 무성하되 법이 머무르지 않음을 두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린 것이리라. 스님은, 이제 한국 불교의 모습을 보고 탄식하는 사람이 없게 하려면, 먼저 주지스님들이 포교에 대한 사고를 개혁해야 하며, 또한 기존 사찰의 존립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성일스님이 주처하는 신흥사 수련원은 수원 용주사 말사인데, 행정구역으로는 화성군 서신면 신안리이다. 서울에서 두 시간쯤 걸리는 비교적 짧은 거리에 비해 불법의 황무지라고 할 만큼 포교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이 구봉산 자락에 한국 불교의 새로운 장을 열어 줄 인재를 기르는 수련원이 야산 너머 서해 바다쪽을 바라보고 있다. 올해로 여기 머무른 지 이십 년째다. 덧없이 흘려 보내면 쉬이 가버릴 세월이나 신흥사로서는 변모의 시간이었고, 스님에겐 세수 마흔여덟 살, 법랍 서른 살에 걸맞는 열정의 세월이었다. 그때가 언제인가. 신흥사의 이십 년사를 쉼없이 얘기하는 스님의 모습은 크게 즐거워하거나 기뻐할 것도 없는 담담한 표정이다. 야산 진흙탕에 있던 조그만 절이 만 평의 대지에 건평 천 평을 웃도는 수련원이 되어, 멸실공히 한국 최초의 청소년 수련원으로 삼백 명의 대중이 실답게 수련을 할 수 있도록 완벽한 시설을 갖추었다. 스님이 십여 성상을 지도해 오면서 보고 느낀 일, 그리고 포교할 때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여 엮은 포교 실무지침서인 「법을 설해 주시옵소서」가 벌써 두 권째 출간되어 초심 포교자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그밖에도 영험록 테이프와 각종 수련회의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 등... 오지를 개척한 스님의 얘기는 언론지 포교면의 한 페이지를 심심찮게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스님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사중寺中을 떠나지 않는다. 아니 떠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정기법회, 가족법회, 국민학생, 중고생, 거사회 등 각종 법회를 떠맡고 있고 거기에다 한 달에 한 번 발행하는 신흥사 사보, 계속해서 맞이할 수련대회 준비, 하루 여덟 시간의 기도, 그리고 달력의 페이지마다 빽빽히 적힌 천도제와 자료를 부탁하는 각종 단체들의 회답 준비 등. 이제 수련원은 제이, 제삼의 성일스남의 화신을 요구하고 있다. 더러 뜻있는 분들이 오지만 대개는 이상과 실천의 괴리를 메우지 못하고 떠난다. 그리하여 늘 시끌벅적한 이곳 수련원을 세 분 스님이 이끌지만 일손의 불평은 없다. “포교는 원력만 있으면 됩니다. 자질로 하거나 여건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바칠 만한 원력이 있으면 자질은 저절로 생기는 법입니다.” 스님의 체험답이다. 주로 강사로 초빙되어 어린이 포교 방안에 대한 특강을 할 때면 빼놓지 않는 얘기다. 삿되지 않은 순수한 믿음에는 마魔도 끼지 않는다고 했다. “난 부처님의 가피를 많이 입었습니다”고 하시는 스님. 열 평짜리 조그만 대웅전이었을 때나 한국 최대의 수련장이 있는 지금이나 밤을 세워 안을 짜고,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를 고심함에는 예전과 별반 변함이 없다. 다만 이젠 비바람, 찬서리를 맞으며 의연하게 서 있는 돌부처처럼 포교의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함이 생겼다고나 할까. 불국을 향 피우는 법기法器로 남아있음을 스님은 늘 부처님께 감사하고 있다.
이제 스님에게 남은 건 이 수련원을 어떻게 이끄는지 하는 것이다. “앞으로 삼천 여 만원의 기금을 모아 청소년 지도자 육성에 도움이 되고자 일 년에 열 명씩 장학금을 주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련원도 이젠 기존의 불자는 되도록 유치하지 않으려 합니다. 청소년 선도에 중점을 두어 스스로 바른 길을 찾도록 프로그램을 제시하여 일반 학교에 청탁을 받을 겁니다.” 스님의 지론대로라면 원력이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그 일도 무난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궁금증이 인다. 많은 수련생이 이곳을 거쳐가고 있는데 그들 가운게 몇 사람이나 발심을 하여 구도의 길을 가고 있을까? “글쎄요. 수련생은 알 수가 없지만 저희 절에서는 간신히 네 명을 건졌습니다” 하시며 너털스레 웃으신다. 그것만은 인력으로 안 되는가 보다. 세세생생 얼마나 복을 지어야 하는 일인 줄 누가 모를까만. 어렵사리 발심을 해도 스스로 근기가 열악하거나 절집안에 여러 가지 반연으로 수행의 길을 바로 가지 못하는 스님네가 많아 안타깝다고 하신다. 이를 두고 스님은 불교 집안의 교육 방침의 문제점이라고 하신다. “우리나라 행자 교육이나 강원 교육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초발심자경문이나 치문 등 마음자리를 위한 글들도 중요하지만 뭐니해도 초심자가 입지가 서려면 부처님 말씀인 원시경전 아함경부터 해야 한다고 봅니다. 팔상록이나 성전도 제대로 모르면서 선도리만 치중하는 교육 과정은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요즘 실다운 신심이 일지 않음을 걱정하며 말하는 단호한 주장이다.
바른 삶을 살려고 하는 이들을 불러들이는 따뜻한 손길을 가진 스님의 이면에 보이는 또 다른 강인함을 엿보며, 한동안 건조하게 걸은 불자의 길을 되돌아보게 한다. 표면적인 것이 아닌 그의 신심의 깊이를 보고 한 번쯤 우리도 가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신흥사의 부처님은 입상立像이다. 모두들 영험있는 부처님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입상은 본디 현세불로 활동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스님의 끊임없는 포교활동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