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불경 이야기를 현대의 빛으로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유마의 방 - 유한근 1992년 07월 125호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름다움을 찾아 부단히 뻗어가는 욕심의 가지들이다. 그리고 신분 상승을 위한 남과의 극한적 대결이며 거기서 비롯되는 갈등이다. 또한 밝은 지혜로 나와 이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무명 속의 고통, 그것이다.
고은의 불교소설「화엄경」은 이러한 괴로움에 시달리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고 또한 진정한 아름다움과 지혜는 어디에 있으며 고통 저편의 환희는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선재동자 이야기를 원형으로 하여 형상한 소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화 원형 구조를 빌려서 현대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은 김영동의「만다라」, 방귀희의「동자야 어디로 가니」와 같은 소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갖는 의미는 「만다라」의 경우, 한 수행자가 지혜를 얻기 위해 산사를 떠나 시정을 방랑하는 이야기를 현대화시킴으로써 그 서사 구조의 틀만 빌어왔을 뿐이며, 「동자야 어디로 가니」는 선재동자의 이야기를 쌩댁쥐베리의 「어린왕자」와 같은 서술방식으로 법륜 사상을 쉽게 접할 수 있게 쓰여져서, 그 포교적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소설「화엄경」은 이 책의 앞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 나그네」의 집필 시작 시기로 보아 앞의 두 작품보다 앞서며 그 규모면이나 문학적 평가면에서 비교되지 않을 만큼 대작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선재가 진리와 지혜를 얻으려고 53선지식을 만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장편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잡한 구성이나 서사의 갈등구조는 없다. 다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선재동자와 엮어 가는 서사의 재미만 있을 뿐이다.
작가 이문열이 이 소설에 대해 간략하게 말했듯이, 이 소설은 “참됨의 아름다움, 거룩함의 아름다움에다 추구와 탐색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말의 아름다움, 사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비어있음의 아름다움과 잃어버림의 아름다움이 있고, 낯섬의 아름다움과 뒤틀림의 아름다움이 있다. 거기서는 자칫 잡스럽게 보일수도 있는 관능의 세계의 아름다움이고, 심지어는 집요함과 치우침도 아름다움이다.” 이 아름다움은 무엇보다도 작가의 뛰어난 문장 솜씨에서 비롯되지만 그보다는 앞의 지적처럼 사유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다. 불교를 이해하는 힘, 화엄경을 느끼고 이해하는 힘이 아름다움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성은 객관성보다는 주관성, 곧 하나의 사실이나 관념을 바라보는 주관적 시각과 그것을 통해서 나오는 주관 정신에서 나온다. 다만 주관 정신에서 얻은 관념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표현하는지에 따라서 그 미학의 두터움과 얇음, 무거움과 가벼움이 가늠될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소설이 특별한 미학적 시각과 사유를 거쳐 응축된 불교적 삶의 힘으로 선재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또 그것을 문학적 언어와 양식을 빌어 표현하는 점을 지나칠 수 없게 된다. 소설 창작에서 중요한 요소인 인물 성격이 고정되어 있고 서사의 전개에 원형이 있으며, 사상의 무거움과 어려움이라는 제한 요소가 있는데도 상상력을 그만큼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또한 표현을 활달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미적 사유나 철학적 사유의 견고함 때문이라 짐작한다.
그뿐만 아니라, 독자가 소설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인도 지나칠 수 없다. 소설은 어쨌든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소설은 무엇 때문이든 감동과 충격을 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도 이 소설은 성공하고 있다. 사건의 갈등이나 극적 구성이 주는 긴장은 없다고 하더라도 빠른 사건의 전개와 53선지식의 인물 성격 유형의 특이함 때문에 이 소설은 독자에게 재미를 준다. 그뿐만 아니라 53의 전형적 또는 개성적 인물의 유형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나타내고 있는 성격 유형이 이 시대의 인간형과 결코 다르지 않으므로 그에 관한 연구가 문학 연구의 한 테마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이 소설의 문학적 성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소설「화엄경」의 문학적 성과는 문체의 아름다움이나 구성의 특이성, 인물 성격의 유영화 같은 문학 형식적 요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내용적 요소인 사유가 깊이 있고 무겁다는 점, 그리고 불교 사상을 문학에 수용 한 점에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문학적 성과를 따지는 일에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앞서 말한 바 있지만, 한 인물이 53선지식을 찾아 다니는 이야기로 구성화하는 데에서 리얼리즘 소설 기법이 따르는 무리함을 루보로망적 표현 기술이라는 반소설적 기법으로 자연스럽게 극복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문학적 단점은, 소설적 감동을 주려면 주제가 선명해야 하는데 이 소설은 소재의 성격상 처음부터 우리 삶의 문제들 가운데 하나를 집약해서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다. 물론 이 소설의 주제는 ‘진리찾기’ 또는 ‘지혜를 얻기 위한 수행하기’로 요약될 수 있지만, 그런 서사구조의 계획성이 독자를 설득하는 데는 미치지 못하는 점 등은 소재의 특이성을 감안하더라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읽은 독자에게 화엄 사상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대개는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점, 다시 말하면 논리가 관념적이어서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긴 하지만 그것을 무엇이라는 말할 수 없는 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가득 담고 있어서 오히려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며 작가가 노리고 있는 주제라고 하더라도 독자 수용의 문제를 고려할 때 결코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지혜와 사랑의 단계가 높아짐에 따라 삶의 환희는 그보다 더 커지며, 지혜와 사랑과 삶의 환희는 어느 곳, 누구에게나 있다는 삶과 인간의 존엄함을 일깨워주는 소설 「화엄경」은 우리 시대의 문제작일 뿐더러 여러 면에서 현대 불교 소설이 그 지평을 어떻게 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불경 이야기를 현대어와 현대의 문학 구조로 재구성했을 때에도 현실적 삶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 그리고 삶의 상징적 혹은 은유적 모습은 과거와 현재가 다를 것이 없으며 그 근본 문제와 원형은 과거의 모습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들을 느꼈다. 그리고 불경 속의 이야기를 현대의 빛으로 끌어내어 재구성하는 작업은 우리가 불교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
소설은 우리들 삶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방법이 직설적이든 은유적이든 우리의 모습과 삶의 이야기를 그리기 마련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삶의 본체가 무엇이며 밝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인간의 본모습이 무엇인지도 배우게 된다. 삶이란 하룻밤의 꿈처럼 허무한 것이라는 선험적인 앎 때문에, 우리는 불경을 통해서 우리가 이 순간에도 삶에 진지할 수 있고 삶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다는 진리를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화엄경」은 이 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한쪽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많은 욕심들이 부딪쳐 만들어 내는 갈등과 고통들로 괴로워하는 우리는, 이 갈등과 고통을 불경을 통해서 극복하고 그것을 현대적 삶의 빛으로 가질 때, 환희에 찬 삶을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