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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인은 자연, 그 자리를 도돌려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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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여연 1992년 07월 125호
금세기에 미국이 저지른 잔악한 횡포 가운데 하나는 베트남 전쟁에서 수만명 의 사람을 살육한 것이지만, 그보다 더욱 큰 것은 인도차이나 반도 그 광활한 땅의 밀림을 불태우고 그것도 부족하여 숲을 고사시키는 화학약품을 인간의 터전에 다량으로 뿌린 것이다. 생태학, 지질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숲이 되살아나고 황폐해진 땅이 회복되려면 반세기가 더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엊그제 신문에는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던 이 땅의 한 무구한 병사가 미군이 살포한 화학약품으로 피부병을 얻어 신음하다가 결국 전쟁의 악몽에서깨어나지 못하고 자살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약육강식을 일삼는 자본주의의 맹주에겐 이 비극적 죽음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도 한낱 스쳐가는 바람소리에 지나지 않다.
해인사의 궁현당 뒷뜰에서 미로 같은 경학원 장독대를 지나 외나무 다리를 건너서 홍제암 가는 길에 있는 나무들을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키 큰 소나무들이 모두 칼로 그어져 일그러진 형상을 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있다. 이미 우리는 이차대전 때 군수 물자가 부족한 일본이 송진액을 기름으로 쓰려고 소나무들의 속살을 도려 냈던 만행의 상흔을 까맣게 잊고 있다. 지난 세기 선진 자본국들은 자기 땅의 풍요를 위해서 이처럼 남의 땅을 약탈하고 식민지화하여 그 민족의 숨통인 국토를 마구 망가뜨렸다.
이런 반동의 인류 역사 속에서 전세계 인구의 이십 퍼센트인 선진국들이 자원의 팔십 퍼센트를 써버리는 현실의 부조리 속에서 지구를 살려내야 한다고 외쳐대고 있으니 얼마나 기막힌 아이러니인가?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건강하고 생산적인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 “리우회의”에 무슨 잘못된 점이 있겠는가만은, 리우선언의 밑바탕에는 삶의 터전을 구하려기보다는 각국의 날카로운 이해 관계 속에서 환경을 볼모로 국가이기주의를 채우려는 선진국들의 탐욕이 깔린 것을 읽을 때, 과연 지구가 살아날까 의심스럽다.
아무튼 지구 환경의 보존에 대한 세계의 뜨거운 관심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환경 파괴의 심각성에 대해 전세계가 인식을 같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특히 지구의 온난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지구의 허파이자 모든 생물의 서식지인 삼림을 살리자는 주장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강대국들은 여전히 기후 변화에 치명적인 핵 실험에 열중하고 후잔국들은 돈 몇 푼 때문에 지구의 삼림을 파괴하여 걷잡을 수 없이 민둥산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 국토도 여기 저기 골프장을 조성하느라 수백만 평의 삼림이 훼손되고 있고 관광 개발을 앞세워 지리산의 모든 산자락이 망가지고 오대산의 내부로 길을 뚫어 아름드리 숲들이 구멍난 허파처럼 황폐해 지면서, 수없이 밀리는 사람들의 쓰레기로 우리 국토는 이미 중병에 걸려 있다. 이 모두가 지구를 파괴하는 범죄들이다.
세계의 많은 정상이 모여서 기후 환경이니 생물 다양성 협약이니 하며 더 많은 결의를 하고 별의별 아이디어를 모은다해도 자원에 대한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을 줄이지 않으면 이 지구는 살아남을 수 없다.
지구를, 이 삼라만상을 근본적으로 살리려면 인간의 욕심은 허망하다는 무상의 진리를 세계 인민에게 일깨워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법을 의지하여 인간 존재의 실상을 깨닫는 우리들의 공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소분지족小分知足의 가치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자.
지구를 살리려면, 이 땅, 이 자연의 주인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을 거두고 오십억의 개체보다 훨씬 많은 자연 하나하나의 개체에게 주인의 몫을 되돌려 주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