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도의 바른 상황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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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유지호
1992년 02월 120호
불교도의 바른 상황 인식
1992년도 벌써 한달 여가 지나가고 있다. 새해 첫머리부터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세상은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다. 세상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그 변화가 무상한 게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격변은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듯싶다.
남북 관계의 큰 진전과 총선,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이합 집산과 격돌뿐만 아니라 남과 북, 미국과 일본의 숨가쁜 외교 경쟁 등은 살아가기 바쁜 우리국민으로서는 미처 그 의의와 앞날을 해석하고 전망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갈수록 힘겨워지는 경제 사정과 \'나사 풀린\' 사회 분위기는 국민 전체를 우려와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불교계도 새해 첫머리부터 일 년여를 끌어오고 잇는 종권 싸움이 드디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 했으나 사태는 다시 반전되어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정부(문화부)의 주선으로 합의문까지 발표했던 싸움 당사자들은 그 뒤에 다시 합의문의 거부로 새로운 국면에 빠져든 것이다.
민자당의 장기 집권 시도와 이의 저지
숨가쁘고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도 올해의 제일 중요한 과제는 민자당의 장기 집권을 저지하느냐, 못하느냐이다.
문화부가 고질적인 조계종의 종권 다툼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든 것도 올해에 있을 거듭되는 선거에서 불교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이미 아는 사실이다. 불교계는 민중 불교 운동권을 빼면 지난 대통령 선거 등에서도 노골적으로 당시 여당인 민정당을 지지했었다. 종권 싸움의 당사자들은 거의 모두가 대중적인 지지를 못 받아 왔고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권력이 누구를 밀어주느냐에 성패가 좌우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이런 사정으로 이들은 정부 여당에 대단히 약하며, 선거 때는 그들의 선거원으로 전락하고 마는 현실이다.
또한 이미 널리 알려졌듯이 작년 말부터 급진전되고 있는 남북한의 관계 개선도 남한 쪽에서는 앞으로 있을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정권은 지난 사 년 동안의 온갖 학정과 부정 부패, 경제의 실패, 부도덕 등을 남북 정상 회담을 이끌어 냄으로써 단번에 만회하여 권력을 재창출하려고 하고 있다. 그 방법으로는 내각제 또는 이원 집정부 제도의의 개헌일 것이다. 노대통령의 공식 선언이 있기는 하였지만 정가와 관측통들은 남북정상 회담이 성사된다면 노대통령은 이를 명분으로 하여 개헌을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정치인이 집권하기 위해 온갖 권모 술수를 쓰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잖냐며 덮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올해의 상황은 그 의미가 보통 때와 다르기 때문에 모든 정치 세력이 필사적이다.
사실 지금의 여당인 민자당은 이념으로 뭉친 정당도 어느 집단을 대변하는 정당도 아니다. 오로지 정권 획득만을 노리고 결합된 정당이다. 3당 합당 때의 밀약과 오늘의 극심한 내분이 그것을 잘 증명해 주고 있다.
민자당은 스스로 군부 정치가 아닌 민간인에 의한 민주화를 가장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지난날의 군부 정권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보수 정치인 중심의 새로운 권력 집단을 뿌리내리려 하고 있다. 올해의 총선과 대선이 이의 성패를 가늠해줄 것이다. 여야가 합의하여 시행하고 있는 지자제법조차 어기면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자치단체장 선거를 연기한 것은 차기 정권을 어떻게 해서든지 차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과연 우리 국민은 이번에도 독재와 부패, 무능과 부도덕의 집단에 권력을 안겨줄 것인지, 아니면 일정 정도의 양심적이고 민족적인 인사가 참여하는 민주 정부를 수립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있다. 그리고 이의 첫 번째 분수령이 3월 말에 잡혀 있는 총선이다. 만일 총선에서 민자당이 압승을 거두게 되면 개헌은 필연으로 되며, 자치단체장 선거 연기라는 법률 개정 등으로 민주적인 제도의 시행은 다시 한 번 후퇴할 것이 뻔한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 임하는 우리 국민들은 반민자당을 기본축으로 하면서 양심적이고 민주적인 인사를 우리의 대표로 선출해야 할 것이다. 한가지 조심할 것은 기성 정치에 혐오를 느끼게 하는 조작성 여론에 속아서 재벌과 5공 그리고 극우 인사들에게 표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기성 정치인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총선 뒤에는 그 결과에 따라서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기성 정치인과 연계를 가질 전망이 매우 짙기 때문이다. 특히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이 선거 결과에 따라서 민자당의 민정계 또는 민자당의 민주계와 연합할 가능성이 매우 짙다.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고 이들에게 표를 주었다가는 큰 실망감만 갖게 될 것이다. 더욱이 온갖 특혜와 부도덕한 방법으로 축재를 거듭해온 재벌들이 직접 정치에서조차 힘을 갖는다면, 이 사회의 앞날은 더욱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총체적인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결의로서 새 출발할 수 있는 길은 민주적인 정권으로의 교체가 큰 힘이 되리라 본다.
통일은 민족 자주의 관점에서
올 정국의 양대 기둥으로 짐작되는 남북한 관계의 진전은 과거의 대결과 냉전 국면에서 화해와 교류, 평화 국면으로 변화되고 있어서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은 조심스런 눈길을 떼지 않고 있는데, 그 까닭은 정권 쪽의 의도와 외세 때문이다.
남북 통일이야말로 칠천만 겨레의 염원이다. 그리고 지난해에 있었던 \'남북 화해와 불가침 및 상호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온 민족이 환영해 마지않는 일이다. 그리고 뒤에도 계속된 대화의 진전은 2월에 있을 제 6차 남북고위급 회담, 남북정상 회담으로 다시 한번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민족의 사활이 걸린 남북한의 통일 논의가 주로 밀실에서 입안되고, 결정과 공표 뒤에도 국민의 의사를 묻는 절차와 과정이 전혀 없는 까닭에 우려를 금할 수 없게 한다. 72년 7.4 남북 공동성명으로 통일의 기대를 부풀려 놓고 유신으로 선회한 역사의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는 최근의 상황이 지난날의 과오처럼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낳고 있다. 남북 관계가 진전되었음에도 여전히 북을 적으로 규정하는 데에서 출발한 국가보안법이 맹위를 떨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통일 인사의 석방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 국민은 남북 당국자간의 협상을 지켜만 볼 것이 아니라 통일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하나하나 준비되도록 해야 하겠다. 이의 구체적인 시도로써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 통일 인사의 석방뿐만 아니라 북한을 우리 민족, 우리 겨레로서 인식하는 실질적인 제반의 조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간의 불교 교류도 이러한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아울러 남북관계의 중요한 합의나 결정 사항은 그러한 일이 있기 전 또는 있은 뒤에라도 반드시 국민의 의견 수렴을 거치고 법률적인 효능을 갖는 제반 조치로 마무리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독점하고 있는 정보나 협상 진행 사항을 국민에게 자세히 밝혀서 우리 국민 모두가 통일 시대를 함께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통일로 가는 길은 남북 당국자들의 순수성과 국민의 민족 동질성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주변 나라들과의 관계이다. 특히 미국, 일본과의 올바른 관계 정립은 통일로 가는 길에서 꼭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 하에서의 군사적 위협이나 일본의 정치 군사적인 영향력의 확대는 물론이고, 고질적인 미국의 통상 압력과 대일 무역 역조도 민족의 자존과 자주 의식으로 극복해야 한다.
얼마 전에 국제적인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던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어느 정도 일단락되고 있는 지금, 일본의 핵무장이 더욱 심각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 나라도 적극 관심을 보여야 한다. 일본의 핵무장으로 인한 제일 큰 위협 대상은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이 자국의 이해를 떠나서 세계의 평화와 민주화를 위해서 희생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이들 나라에 대해서 경계와 긴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
엄중한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 불교도가 해야 할 일은, 큰 맥락에서 본다면 민주 정부의 수립과 민족 통일 운동일 것이다. 총선이 임박한 지금 시기에서 반민자당 운동과 민주 인사 당선 운동 그리고 민중과 민주주의를 위한 모든 노력일 것이다.
그런데 경불련과 불교인권위와 같이 이른바 중간층 운동 단체와 종단 협의회 등은 공명 선거 운동에 온 힘을 쏟는다는 소식이다. 물론 이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하면 정부 여당의 들러리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반민자당운동과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한 운동을 못할 바에는 지난 번에 연대 성명을 낸 것과 같이 정신대 문제에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사실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은 그들이다.
격변의 시기에 불교인의 현명한 판단과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