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사르는 불꽃_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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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이야기 - 이원섭
1992년 02월 120호
일체중생희견보살
수왕화宿王華라는 이름의 보살이 일어나 질문하는 것으로 이 품은 시작된다. 수왕화는 \'별자리의 왕의 빛\'을 의미하여 수는 성수星宿라고 할 때의 그것이므로 숙이라고 읽어서는 안 된다.
\"세존이시여, 약왕보살은 어떻게 사바세계 노니시며, 이 약왕보살은 얼마나한 백천만억 나유타 수의 난행과 고행 겪으시나이까. 좋사오니 세존이시여, 원컨대 조금 설해 주시오소서. 온갖 천天과 용과 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와·긴나라·마후라가 따위 인비인人非人 등과, 또 다른 세계에서 찾아온 보살들과 이곳에 있는 성문의 무리들이, 듣자오면 그 모두 기꺼워하오리다.\"
이는 약왕보살의 난행·고행을 짐작하고 있는 데서 나온 물음이며, 그것을 듣는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중생이 기뻐하리라는 말은 그 난행과 고행이 법화경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무량겁 전 일월정명덕여래日月淨明德如來 때의 일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하신다.
\"그때, 저 부처님이 일체중생희견보살一切衆生喜見菩薩을 비롯한 여러 보살과 모든 성문의 무리 위하사 법화경 설하시거늘, 이 일체중생희견보살이 고행 익혀 일월 정명덕불 법 가운데서 정진 수행해 일심으로 부처 되기 구하여, 만이천 년 채운 뒤에야 현일체색신삼매現一切色身三昧 얻을 수 있었니라.\"
보살과 성문을 위해 법화경을 설하셨다 함은 이에 앞서 중생의 근기에 맞춰 삼승으로 교화하셨음을 뜻하고, 드디어 법화경이 설해짐에 미쳐 열심히 일불승을 닦는 보살이 나타난 것도 당연하다. 현일체색신삼매란 온갖 중생의 몸을 뜻대로 나타낼 수 있는 삼매다.
이에 현일체색신삼매를 얻게 된 것은 모두가 법화경을 들은 때문이라 생각한 일체중생희견보살은, 곧 삼매에 들어 하늘로부터 만다라화·마하만다라화와 전단 따위의 귀중한 향을 비오게 하여 부처님과 법화경에 공양드렸다는 것인데, 여기까지는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곧 이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장면이 벌어진다.
그것은 \"내 비록 신통력 나타내어 부처님 공양하나, 몸으로써 공양함만 못하다\"고 생각한 일체중생희견보살이 제 몸을 태우기에 이르렀고, 또 이것을 온갖 부처님이 나타나 찬탄하셨기 때문이다.
곧 전단, 훈륙, 도루바, 필력가 따위 우리에게는 생소한 여러 향을 천이백 년에 걸쳐 먹고 마신 일체중생희견보살은, \"향유를 몸에 발라 일월정명덕불 앞에 나아가, 하늘의 보의寶衣 몸에 두르고 향유 붓고 나, 신통력의 서원 세워 두루 팔십억 향아사의 세계를 비추었고,\" 이를 보신 온갖 부처님들은 동시에 찬탄해 이르시되, \"좋고 좋도다, 선남자야. 이야말로 진정한 정진, 이야말로 여래께 드리는 진정한 법공양이니...\" 라 하셨다 함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불은 천이백 년 동안이나 탔다고 한다.
몸을 불사른 그 뜻
그러면 일체중생희견보살이 제 몸을 불사른 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법화경을 닦는 행자는 꼭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우리 나라에도 근자에 운동권의 젊은이 중에는 가끔 제 몸에 불을 지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것과 저것은 같은가, 같지 않은가. 이는 자살 중에서도 끔찍한 자살에 속하는 터이므로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
먼저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일체중생희견보살의 이 행동은 결코 자살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살은 절망의 표현이어서, 자신을 불사르는 요즘의 젊은이가 제 나름의 신념에 입각해서 그것을 결행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생존에 대한 좌절감이 짙게 깔려 있다. 이에 비해 일체중생희견보살은 법화경을 들을 수 있었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꽃과 향으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나서, 귀중하기로는 어떤 물건도 제 몸의 귀중함에 못 미친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마침내 이것을 공양하기로 결의했던 터이므로, 이것을 생의 절망으로 볼 소지는 조금도 없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몸이 가장 소중하다 해서 이를 공양한 것이라면, 그같은 사정은 누구나 같은 터이니까 모두가 꼭 한 번은 이를 실천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따위의 문제가 생길 수 있겠는데, 여기서 우리에게 시사함이 큰 것은 천태대사다.
천태대사가 스물두살의 젊은 몸으로 스승 혜사선사慧思禪師의 가르침을 따라, 대소산大蘇山에서 법화삼매를 닦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정진을 시작한지 이칠일이 지난 때의 일이다. 천태대사의 독경은 마침 약왕보살본사품에 도달해 있었는데, 일체중생희견보살이 스스로 제 몸을 불사르는 장면에 뒤이어, 글이 \"온갖 부처님이 동시에 찬탄해 이르시되, 좋고 좋도다, 선남자야. 이야말로 진정한 정진, 이야말로 여래에게 드리는 진정한 법공양이니\" 하는 데에 이르렀을 때였다. 문득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삼매가 나타나니, 대사의 별전別傳은 이 순간의 체험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이 일구一句에 이루러 몸과 마음이 활짝 열리며 적연寂然하여 선정에 드니, 총지(다라니)가 고요히 이를 말미암아 일어났다. 그리하여 법화경을 비춤은 높이 솟은 해가 그윽한 골짜기를 비춤과 같고, 제법의 상에 통달함은 장풍이 허공에 노님과 같았다.\" 그리고 이를 안 혜사선사는 크게 천태선사를 칭찬했다. \"너 아니더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나 아니더면 이를 알아보지 못했으리니, 네가 들어간 선정은 법화삼매의 전방편前方便이요, 거기서 생겨난 총지는 초선다라니初旋陀羅尼다. 비록 학해學解를 일삼는 사람이 천 명 만 명이 있어 네 말을 뒤좇는다 해도 다하지 못하리니, 너는 설법하는 사람 중에서 단연 으뜸인 자리에 있다.\"
전방편이라는 말은 법화삼매의 해식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뜻한다. 그러나 그 전단계에 이르러 있음을 증명하는 점에서는 법화삼매에 들 지반을 확보한 것이 된다. 또 초선다라니는 뒤의 보현 보살권발품에 나오는 다라니의 하나여서 공의 깨달음을 뜻하는 터이니까, 비록 중도에는 도달하지 못했다해도 거기에 이를 지반은 이미 갖춘 것이 된다. 이 체험이 후일의 천태대사로 하여금 지관쌍수智觀雙修의 길을 가게 했던 것이어서, 이때의 깨달음을 대소묘오大蘇妙悟라 일컫는다.
그리고 몸을 불사른 일이 어떤 뜻을 지니기에 그것이 진정한 법공양이 되는지에 대해, 천태대사는「법화문구」에서 그의 견해를 밝힌 바가 있는데, 이것은 그의 체험에서 나온 해석인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제 손으로 자기 몸을 불사른다 함은, 반야의 지혜로 일체가 공하다고 보아 제 몸에 대한 애착을 소탕해 없애는 일이다. 그리고 몸을 태워 공양하는 바에는, 태워지는 몸과 태우는 불이 있고, 공양하는 자와 공양받는 부처님의 차별이 있음이 되나, 지금은 공의 지혜로 대하는 터이므로 태워지는 몸도 실상이요, 태우는 불도 실상 바로 그것이어서 양자 사이에는 어떤 구별도 없으며, 이런 관계는 공양하는 나와 공양받는 부처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런 경지에서 제 몸을 불사른 데에, 그것이 부처님들에 의해 진실한 법공양이라고 찬탄받은 근거가 있다 함이, 천태대사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몸을 태우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몸에 대한 집착을 불태우는 데에 목적이 있은 것이 되니, 집착을 끊은 처지에서는 몸을 불사르든 안 사르든 자유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아무리 몸을 태워 보아야 별뜻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뒷이야기
죽고 난 그 보살은 그 공덕에 의해 다시 태어나 일월정덕불을 섬기고, 열반하시자 다시 그 팔을 사리탑 앞에 태운 사연 따위가 설해졌는데, 그 일체중생희견보살이 오늘의 약왕보살이라 함이 부처님이 내린 결론이시다. 결국 법화경의 수행이 자신에 대한 애착을 끊는 선에서 실천되어야 함을 일깨우시는 동시에, 약왕보살이 과거세에서 행한 난행·고행을 들어서 오늘의 행자들을 격려하시는 데에 이 품의 취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