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개나리꽃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시가 있는 해인삼매 - 김승희 1992년 02월 120호
어디에선가, 지금 분명,
안 보이는 무엇이 달려오고 있나보다.
지지직거리는 노란 불꽃들이
정원의 추운 땅속이나
헐벗은 개천의 축대 능선을 따라
급히 달려가고 달려오는 소리들이 들린다.
금색을 칠한 新婦의 자동차들,
혹은 몸에 검은 줄무늬가 쳐진 장의차나
앰뷸런스처럼
황급하게 무언가 생명에 닿으려고
달려가고 달려오는
한 무더기의 그토록 강한 호소들의 수선거림,

그렇다, 모든 꽃들은
응급이다,
구급이다,
사랑을 향하여 누전처럼 달려가는
봄의 개나리 꽃들,
행복인가 불운인가 물을 경황도 없이
이 봄에도
단지 철망을 뿌리치는 몸짓으로만
무더기지어 무더기지어
꽃 피어나고 있는
저 응급처치의 노란 개나리 꽃들의 원무

시작메모
초봄이 되면 누구보다 제일 먼저 피어나는 개나리꽃, 그 노란 덩어리를 바라보노라면 장미나 칸나 같은 꽃들처럼 완성된 꽃의 개체성을 느끼기보다는「피어난다」라는 동사의 원형질을 보는 기분이 된다. 피어난다는 것, 봄이 되기도 전에, 황급하게 꽃피어 난다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단지 생명에의 황급한 호소, 생명의 원초적인 동력분출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산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