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해에서 만난 금강삼매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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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은정희
1992년 02월 120호
아버지의 종용으로 마지못해 다니게 된 법대法大를 졸업한 뒤, 불탄일 기념 법회에서 소개받은 조계사 청년 법회에 다니던 시절이 아마 나의 초발심 때였던 것 같다. 수요 참선 법회, 일요 교리 법회, 그밖에 여러 법회에 꽤 열심히 좇아 다녔다. 그 법문 내용들은 어쩌면 바로 나 자신의 소리를 되뇌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 때가 많았던 탓이었을까
그렇게 몇 년이 흐르면서 불교야말로 내가 평생 공부해야 할 과제라고 여겨졌고, 이럴 게 아니라 아예 본격적으로 불교를 전공해 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까지 되었다.
얼마 뒤 모교인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였으나, 그 넓은 불교학 가운데에 어느 부분을 특히 전공해야 할지 아직 막막하기만 하였다. 다만 동숭동 문리대에서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강의를 청강했을 때의 그 탁 트인 원효 사상에 매료되어 막연히 원효를 생각하고 있긴 했다. 막상 석사 논문을 쓰기 시작했을 때, 금강삼매경론에 관한 연구 업적이 거의 없는데다가 나의 짧은 한문 실력과 불교학 실력으로는 어림없는 도전임을 절감하였다. 마침 K교수가 대만에서「大乘起信論」관계 문헌을 여러 권 보내주면서 관계 문헌도 거의 부족한 금강삼매경론보다는「기신론」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보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해 주었다. 어쩔 수 없이「기신론」으로 연구 방향을 돌리긴 했으나, 사정이 더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원효의「기신론 소·별기」에 대한 참고할 만한 번역서와 연구서가 거의 전무하였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차선책으로 마명馬鳴의「대승기신론」으로 연구 범위를 축소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박사 과정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원효를 제대로 정복해 보겠다는 비장한(?) 각오로써 처음 석사 때에 포기했던「금강삼매경론」과「기신론 소·별기」를 놓고, 십 수 년 동안 갈고 닦아 온 한문 실력을 동원하였으나, 결과는 역시 역부족, 이제 원효 학문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고 넓어야 하는가만을 비로소 알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금강삼매경론을 마지못해 포기한 채, 원효의「기신론 소·별기」만으로 학위를 받고 나서, 출판사의 권유로「기신론 소·별기」의 번역에 착수한 지 다섯 해만에 번역서가 출간되었고, 이어서 문화부 우량 도서로 지정되는 한편, 한국출판문화 번역상까지 받게 되어 그간의 힘겨운 작업에 대한 보람을 가지게 되었다. 제대로 된 번역서 한 권 없으면서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는 전도된 학문 풍토에 한번 쐐기를 박아보려는 시도가 그래도 공감을 받는구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한국 불교 연구에 대한 첫 걸음에 그칠 뿐,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은 석사, 박사 과정에서 눈물을 삼키고 일단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금강삼매경론에 대한 번역에 제자들과 함께 매달리고 있다. 박사 논문 준비 시절, 금강삼매경론을 해독하느라고 얼마 전 돌아가신 법운 이종익 선생님과 함께 끙끙 애를 쓰다가 어렵고 힘든 대목에 이르면 \"이봐, 우리가 여기서 모르는 것은 부처님도 모르네. 그냥 넘어 가세, 넘어 가\" 라고 가끔 말씀하시던 기억이 새롭다. 금강삼매경론에서의 원효의 생각을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또 얼마간의 세월을 요구할지 알 수 없으나, 이를 끝내면 앞에서 어지간히 해독해 놓은 원효의 이장의二障義를 이어서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단 원효의 현존 저술들을 마무리한 뒤에 원효 사상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와 평가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한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사상가 원효의 참모습을 되살리는 일은 그래서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