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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세의 업으로 만난 원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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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월운 1992년 02월 120호
내가 중이 되기 전에 남해 화방사라는 절에 들른 적이 있다. 그때 객실 구석을 보니 경전 몇 권이 있었는데 지금 기억으로 더듬어보니 작법귀감, 금강경오가해, 원각경 들로 생각된다. 다행히 글줄을 좀 읽은 터라 이것저것 뒤지다 보니 모두가 못 듣던 말인데 퍽이나 신기시원스러웠다. 더구나 금강경오가해에 회편되어 있는 몇몇 선사들의 주석은 문장으로 보아도 묘한 운치가 있고 뜻도 퍽이나 좋아 은근히 재미가 들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불교가 이런 것이었구나! 했고 마침내 중이 되게 되었지만… 그런데 원각경을 뒤지다 보니 若諸世界 一切種性 卵生 胎生 濕生 化生 皆因淫欲 而正性命 當知輪廻 愛爲根本이란 대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皆因淫欲 而正性命이란 구절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중생은 모두가 음욕으로 그 성명을 바로 잡는다고 새겼으니 말이다. 음욕 때문에 성명을 그르친다고 하면 모르겠으되 음욕으로써 그 성명을 바로 잡는다면 역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그 끝부분에는 當知輪廻 愛爲根本라 하여 애욕은 윤회의 근본이 된다고 한 것과는 어떻게 맥을 이을 것인가?
음욕은 음심이나 욕심일 것이니 애욕(愛)과 크게 다른 바 없겠는데, 왜 이렇게 다르게 표현되었을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이 대목은 경의 첫머리에 문수, 보현, 보안, 금강장 들이 차례로 나와서 나름대로 묻고, 부처님께서 대답하는 과정에서 \"보살은 먼저 무시 이래로 내려오는 윤회의 근본을 끊어야 한다\"는 분부를 받게 된다. 이 때, 미륵 보살이 \"어찌하여야 윤회를 끊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부처님께서 윤회를 끊는 방법을 보여 주시는 첫 대목이 바로 위에서 말한 구절이다.
바로 위의 금강경보살장에서 \"以思惟心 測度如來 圓覺境界 如取螢火 燒須彌山\" 곧 분별있는 마음으로 여래의 원각경계를 헤아린다면 마치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는 것과 같다고 하셨는데, 변변치 않은 글솜씨로 경전을 처음 보자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도리어 무엇이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가당치 않은 망발이었다.
그렇다고 경에 잘못이 있을 리는 없겠는데 내 생각에는 틀린 것처럼 보이겠지, 그렇다고 어디에 물어 볼 이도 없고, 소석疏釋 역시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세월이 약이라고, 얼마 간의 세월이 흘러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正\'자를 바르게 바로잡는다고 볼 것이 아니라 쓰러지지 않도록 부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했었다. 초보자도 유단자의 바둑을 훈수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유단자도 잘못 볼 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하찮은 일도 무엇인가에 걸리면 그렇게도 풀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만난 것이 어쩌면 내 생애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뜻이 통하지 않아서 애쓰던 일이 빌미가 되어서 뜻이 통한 뒤에도 그 애착 때문에 이 부분에 관해 생각할 기회가 대체로 많았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다.
\"중생들은 모두가 음욕으로 그 성명을 버티고 있다\"는 이 한 말씀이 얼마나 중생의 세계를 간곡하게 가르쳐 주신 말씀이겠는가? 속담에는 \"저 사람 욕심만 빼면 껍데기 뿐이야!\" 하거나 \"저 사람 거짓말 빼놓으면 허수아비야!\" 하기도 하듯이, 어쩌면 이 중생 세계를 버티고 있는 힘은 음욕, 또 애욕뿐이란 말씀이 요즘 들어 더욱 실감이 나는 것이다.
이 음욕의 뿌리는 물론 무명이어서 결국 무명이란 요술쟁이가 음욕이라는 탈을 쓰고서 때로는 안에서 끝없는 미혹을 일으키고 겉으로는 온갖 욕심의 대상을 빚어 낸다. 이 안의 미혹과 바깥 경계가 서로 만났다 헤어졌다 하면서 진여의 이치를 보지 못하게 하는 이장理障과 끝없이 생사의 길을 헤매게 하는 사장事障을 형성한다고 하였다. 이를 기신론과 같은 성종행상과 맞대어 보면 이장은 不了突知眞如法一하는 根本無明住地에 해당하고 사장은 육염六染으로서 삼세 유추와 같은 본·말 무명이 이에 해당한다고 유추하게 되었다. 꼭 맞는 유추일지는 모르나 경전을 이해하는 데에 우주의 근본인 진여와 잘못의 첫 자리인 무명과 그리고 그 무명 때문에 생겨난 망심과 망경妄境의 상관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대목의 상하 경문은 이 관계를 잘 정리해 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입산 직전에 먼저 이 장애물과 맞부딪쳤던 것이다. 어쩌면 불경과의 인연이 아주 이루어지지 못할 뻔했던 상황이었는데 나의 꽁한 성격이 도리어 오늘날까지 눈먼 거북이 바다에서 허우적대듯이나마 교해에서 그럭저럭 보내게 되었으리라 생각하니 내생의 인연은 좀 되었을까 하여 먼저 다행한 일이었다고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