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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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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참법문 - 일타 1992년 02월 120호
도솔천 그 자리에서 왕궁에 나투셨고
모태에서 움직임없이 중생 제도 마치셨네
녹야원에서 시작하여 구시라까지
일찍이 한 마디도 설한 바 없네
오늘은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인연이 다하심을 알고 육신의 허망함을 대중에게 몸소 보이신 열반일입니다. 대석가 부처님은 이 세상에 오셨다 가심은 통하여 우리에게 성불에의 길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여 주셨고, 마침내 마지막 사바에서의 모습까지도 열반의 대드라마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행하신 네 번의 중요한 선택과 실천행에 대하여 사대 명절을 세워 기념합니다.
첫째가 사바세계에 태어나신 사월초파일이요, 둘째가 도를 깨친 납월 팔일이요, 셋째가 가비라성을 넘어 출가한 이월 팔일이요, 넷째가 사라쌍수 아래서 대열반에 드신 이월 보름입니다.
묘하게도 부처님께서 뚜렷하게 발자취를 남기신 날이 초여드레인데 열반일은 유독 보름날입니다. 그렇다면 왜 열반일만 보름날입니까? 혹시 여기에 무슨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처음에 게송에서 말했듯이 우리 부처님은 도솔천을 떠나지 않고 이미 왕궁에 내려왔고 모태에서 나오기에 앞서서 중생을 제도해 마쳤다고 했듯이, 과거 전생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미 깨달음을 이루어 도솔천 내원궁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중생계 가운데에서 어디가 가장 고통이 심한 곳인가 살펴보니 우리가 사는 이곳 사바세계이더랍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곳 남섬부주에 오셔서 몸소 중생의 몸을 나투시어 성불에의 전형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출생, 출가, 성도, 열반을 자유 자재하시면서 중생이면 누구나 행할 수 있는 모범을 보여 주신 것이지요. 음력 여드레면 달이 반쯤 부풀어 얼마든지 커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 것이요, 보름날이면 만월이 되어 가장 원만하고 충만하게 가득 차 있는 상태인 것처럼, 부처님의 열반 또한 모든 것의 궁극적인 완성으로써 원만한 회향을 보름달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사람 얼굴에는 구멍이 일곱 개 있습니다. 눈에 두 개, 코에 두 개, 귀에 두 개, 입에 하나 해서 모두 일곱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일곱이면 철이 드는 때인지라 남자와 여자 모두 이성 감정이 생기기 때문에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했고, 또 모든 지식과 사량 분별을 받아들이는 나이이기 때문에 학교에 보냅니다. 일곱에 일곱을 하면 열 넷으로 사춘기의 성인이 되는 때이고, 여기에 다시 일곱을 더하면 스물하나로 군대에 가야 하고, 또 일곱을 더하면 스물여덟으로 장가를 가야 합니다.
칠칠은 사십구라, 여자 나이 마흔아홉이면 후손을 생산할 수 없는 나이가 됩니다. 열네살에 시작한 여자의 역할이 여기에 오면 끝이 나지요.
이렇듯이 자연이나 사람이나 일곱이라는 숫자는 중요한 뜻이 담겨져 있고, 동서양에서 모두 일곱은 최고의 숫자입니다. 부처님의 열반일 또한 그러한 사람과 자연의 중요한 이치에 맞추어 여덟에 일곱을 더한 보름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이월 보름은 설산에 눈이 녹아서 강물이 넘쳐나고 그 물은 대지의 흙을 적셔서 모든 만물이 풍만하게 개화하게 하는 날입니다. 바야흐로 겨울이 가고 만물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봄의 문턱입니다. 이렇듯이 부처님의 열반일은 모든 것의 완성인 동시에 또 끊임없는 시작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맨 처음 법륜을 굴려 아약교진여를 제도하시고 맨 마지막 수발타라를 건지신 다음에 앞에서 송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도솔천 내원궁에서 흰 코끼리를 타고 중천축국 가비라국에 태어났지만, 도솔천에 내려오기 전에 이미 왕궁에 왔고,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중생을 제도해 마쳤으니, 마흔아홉 해 동안 법문을 설하고서도 나는 한 마디도 설하지 않았다, 다만 이것은 약방문이지 약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약방문만 설했으니 이제 오늘 저녁에는 병을 고치는 약을 주겠노라 합니다. 그래서 구시라 사라쌍수 아래 모인 모든 대중들은 부처님께서 무슨 약을 주시려나 하고 귀를 쫑긋하고 눈을 크게 뜨고 부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홀연히 자기 앞에 있는 꽃 한 송이를 들어 그윽히 보이며 내가 꽃을 들어 보이는 까닭을 일러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대중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고 그냥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때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가섭존자만 그 뜻을 알고 껄껄 웃었습니다. 이처럼 가섭존자가 웃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서 오늘 나의 정법안장 열반묘심을 가섭에게 전하노라, 가섭에게 정법을 전했으니 나의 할 일은 모두 끝났다 하시고 홀연히 사바세계의 인연을 끊으시고 열반에 드십니다.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얼굴을 서쪽을 바라보시며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길게 대시고 왼쪽 팔을 쭉 펴서 무릎에 나란히 하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열반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렸지만, 어디 본디 부처님께서 오고감이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마지막 유촉처럼 이제부터는 스스로 힘으로 공부하고 법에 의지해 정진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여기에 모인 대중도 한 달에 한 번일 지라도 간절히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꽃을 드신 까닭을 궁구해야 합니다. 일심 지성으로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매달리는 것과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정신을 모으고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까닭이 무엇인고?\" 해야 합니다. 또 여기서는 자력 수행과 더불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을 찾는 기도를 한 시간쯤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천수천안관세음이시여, 저에게 정진하는 힘을 주소서. 무명의 어둠을 벗어나게 하소서 하고 그 대자대비한 가피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기도와 정진을 병행할 때, 공부가 수월하게 되고 마장도 쉬이 소멸됩니다. 천 날 만 날 남의 집 살림살이만 계산하지 말고, 오늘 하루쯤은 자기 속살림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지족암 참선 용맹 정진 법회의 의미입니다.
중생에게는 동업同業과 별업別業이 있습니다. 옛날에 같이 업을 지은 사람이 과보를 함께 받는 것이 동업이라면, 같은 업을 지었으면서도 달리 과보를 받는 것은 별업이라고 합니다.
어떤 부부가 살았는데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다가 홀연히 사내 자식을 하나 보게 되었어요. 늘그막에 본 귀한 자식인지라 이들 부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이름도 금덩어리, 옥덩어리 같다 해서 금옥이라 짓고, 애지 중지하기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어요. 변소에 가도 업고 가고, 마실을 가도 업고 가고, 무엇이든지 달라고 하면 다 사주고, 맛있는 것, 좋은 옷 등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키웠습니다. 그래 놓으니까 자연히 아이의 습관이 아주 못쓰게 되었지요.
어느 날 하루는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에게 바람을 쏘여 준다고 같이 들판에 나갔습니다. 먹을 것도 준비하고 포대기로 아이를 싸서 등에 업었지요.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 주고 재미있는 장난감도 사 주고 맛있는 것도 듬뿍 사 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등에 업힌 아이가 아버지의 머리를 탁 치면서 \"아버지, 저것 줘\" 했어요. 아버지는 어리둥절하여 \"저것이 뭐냐?\" 하고 물었지만 아이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무작정 \"저것 줘\" 하고 바락바락 떼를 쓰는 겁니다. 애가 탄 아버지는 아이를 달래고 어르면서 무엇을 달라고 하느냐고 물어도 제 성질을 못이긴 아이는 그만 거품을 물고 새파랗게 까무라쳤습니다.
당황한 아버지는 아이를 업고 집에 달려와 방에 눕히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코를 빨고 야단을 쳤는데도 아이는 끝내 죽어버렸어요. 참 기막힐 노릇이지요. 사람의 목숨이 숨 한 번 쉬는 데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는가. 늘그막에 얻은 자식을 졸지에 잃었으니 그 쓰라린 심정이 오죽했겠어요. 또 집에 돌아온 아내는 죽은 아이를 보고 더 울고불고 야단 난리가 나 버렸습니다.
\"이놈의 영감, 어쩌다가 멀쩡한 아이를 죽였오, 응? 아이가 무얼 달라고 하면 돌멩이라도 집어 줘야지\" 하고 남편을 때리고 꼬집고 이빨로 물어뜯고 발악을 합니다. 그러나 이 남자는 아이가 갑작스럽게 \"저것 줘\" 하고 발버둥을 치던 것이 괴이하게 생각되어 곰곰이 생각합니다. 여자는 여자대로 자식 잃은 슬픔에 몇 날 며칠이고 식음을 전폐하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남자는 남자대로 아이의 갑작스런 죽음이 괴이하게 여겨져 도대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남자의 등짝을 뻥 차면서 아이를 살려내라고 고함을 치는 소리에 그만 번쩍 확철 대오하게 깨달아 버렸어요. 깨닫고 보니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빈주먹입니다. 그러나 비록 빈주먹이지만 이 사람이 손바닥을 펼 때마다 향기로운 천만 송이 꽃들이 훨훨 떨어져서 수많은 중생을 정토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백만 대금을 주는 것도, 일체 병고를 고치는 것도, 무수한 액난을 물리치는 것도 이 빈주먹입니다. 또 이 사람이 깨치고 나서 자기의 과거를 돌아보니 자기 아들하고는 전생에 함께 수행하던 좋은 도반이었어요. 저 깊은 산속에서 청정 무구한 도를 닦는 수좌로 정진을 하고 있는데 어떤 보살이 이 둘을 지성으로 시봉했어요. 양식도 가져오고, 과일도 올리고, 옷도 지어다 주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살이 두 스님을 공평하게 시봉을 해야 하는데, 그만 분별심을 내서 얼굴이 반듯하고 미남인 스님에게는 좋은 과일과 좋은 옷을 주고 그렇지 못한 스님에게는 소홀히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자꾸 하다 보니 이 보살이 미남 스님에게 자꾸만 마음이 쏠리는 거예요. 그 스님 또한 이 보살의 정성에 자꾸 마음이 이끌리는데, 이것이 모두 상대적인 인간 세계의 인정이 아닙니까? 결국에는 다음 생에 태어나서 전생의 인연으로 이 보살과 스님은 부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공부를 해야 할 사람들이 부부가 되었으니, 가정이 평탄할 리가 없지요. 그 가운데에서도 자식이 없는 것이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공부하던 못생긴 스님은 열심히 정진해서 도를 성취했어요. 이렇게 도를 이루고 나서 어디에 가서 중생을 제도할까 하는데, 마침 전생에 같이 공부하던 도반이 자식이 없는 것을 알고 이들 부부의 자식으로 태어났어요. 이 자식이 바로 금옥입니다. 그리고 금옥이는 자기의 부모를 고통으로 몰고가서 끝내는 깨닫게 만든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배우더라도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의심을 궁구해 나가면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선 공부하는 데에는 간절한 마음이 제일입니다. 선지식 스님을 만나서 화두에 커다란 의심을 일으키고, 또한 그 의단을 끝까지 이어갈 대분심이 필요한데 이것은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선문에서는 화두의 길에 간절하다는 뜻인 \"절\"자가 가장 유력한 도반이라고 말합니다.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해태심이 생기고, 해태심이 생기면 방종한 생각이 구름같이 일어나 이 몸을 이리저리 끌고 다닙니다. 한 번 이런 해태심이 일어나면 공부의 길에서는 아주 멀어집니다. 오직 화두를 정수리에 달아 두고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육칠십 늙은 과부가 외자식을 잃은 뒤에 자식 생각 간절하듯이 한 생각으로 공부를 지어야 합니다.
\"염화미소拈花微笑\", 부처님이 꽃을 드신 까닭이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오늘 저녁 하루만이라도 놓치지 말고 지어 갈 수 있도록 합시다. 또 법문을 들을 때는 간절하다가 돌아서면 금방 서문 시장에 갔다가, 옆집 아파트에 갔다가 하지 말고, 오늘 저녁에 화두가 여실하면 바로 깨치고 만다는 신심으로 공부해 봅시다.

무릇 무상은 빠르고 생사는 부평초의 이슬같다.
해가 가고 해가 간다.
저녁노을 비낀 청산에 해가 간다.
하루하루를 다 보내고
한 달 한 달을 일없이 보내고
또 한 해가 빠르게 지나가네.
일백 년 삼만육천 날이 번개처럼 지나가네.
나무아미타불

이 법문은 해인사 지족암에서 매월 음력 보름에 실시하는 철야 정진 법회에서 일타 큰스님께서 하신 법문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