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 도량 도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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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박원자
1992년 02월 120호
\"우리, 세상사에 대한 불평 불만부터 합시다.\" 스님의 \'우리\' 라는 표현이 약간의 한기가 서려 있는 방안 분위기를 따뜻하게 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스님은 불평 불만들을 다감한 음성으로 잠깐 동안 이야기했는데, \"해인지가 눈길을 바깥으로 돌리기보다는 부끄럽고 가슴아픈 일이더라도 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를 단호하게 짚어내는 작업을 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금의 불교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참회와 각성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가 그런 의지를 끊임없이 다듬어 나가지 않으면, 상처가 깊어져 치유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가게 될 것입니다. 뭔가 바깥으로는 화려하게 들고 나오지만, 내용 면에서는 진실과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선우도량 또한 그런 각성에서 출발하였다고 볼 수 있지요.\"
결사 운동이, 주변 사회 상황이 극도의 혼란으로 치다를 때, 그리고 기성 교단이 세상을 정화해 가야 할 윤리적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에 일어났다는 데에서 오늘날 \'선우도량\' 결사가 시사하는 바는 자못 크다 할 수 있다. 도법 스님은 \'선우도량\' 결사를 이끈 분으로, 지금 초대 상임 대표 선우의 소임을 맡고 있는데 \'결사\'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했다. \"출가가 원초적인 문제를 풀어 보려는 한 인간의 결사라고 한다면, 집단적인 결의와 실천을 통해서 교단과 각자의 활로를 찾으려는 작업이 결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88년에 일어났던 봉은사 사태는 그간 불교계에 대해 느꼈던 숱한 절망감과는 또 다른 깊은 절망감을 안겨 주었다. 젊은 학인 스님들이 개인이나 집단적인 이해를 앞세워 폭력을 동원하여 깊숙이 개입하는 것을 보았을 때, 도법스님은 그 동안 끊임없이 물러나야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보다 더한 절망감을 느꼈고, 교단 문제가 자연스럽게 세월이 흐르고 세대 교체가 되면 변화가 오리라고 믿었던 기대가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동안 종단이나 어른, 나아가서는 정부나 사회를 향했던 불평 불만들을 이제는 안으로 돌려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되었어요. 철저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재정리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는 새로운 방향을 찾는 접근 방식이 오늘날 불교계에서 절실히 요청하는 것임을 통감했습니다. 봉은사 사태를 인연으로 뜻을 같이한 도반 스님들과 자연스럽게 대중 결사 운동의 필요성이 야기되었지요. 적어도 우린 성급하게 현실적인 대안이나 해결책 또는 성취감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이러한 부분은 오히려 냉정하게 포기하고,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문제를 근원적으로 제기하고 해결하자는 기본 자세를 취하게 되었지요.\" 역사와 전통의 주인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심각한 불교 현실을 인식하였고, 근원적인 원인이 불교의 세계관과 역사 인식의 결여에 있다고 매듭지으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구체적인 책임과 역할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판단 아래 선우도량이 탄생되었다. 약 두 해에 걸친 준비 끝에 백여 명의 스님들이 동참한 가운데 1990년 11월에 창립된 선우도량은 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어떤 희망의 대안으로까지 떠오르게 되었다. 우리가 선우도량 결사를 \'조계종의 희망\' 으로 바라보았던 것은, 그간 문제를 숱하게 바깥에서만 찾으려고 했던 불교계의 행위에 대한 반성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사회 상황은 너무나 크고 급속하게 변화해 가고 있는데 불교는 이러한 현실에 맞닥뜨려 나갈 수 있는 힘이 너무 빈곤한 게 현실입니다. 그런 안타까움 때문에 선우도량을 만들어 내긴 했는데, 구체적인 현실 앞에서는 솔직한 심정으로 난감합니다. 본래의 불교 정신과 수행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당위성만 가지고 구체적인 현실을 풀어 나가기에는 아직 역량이 부족하지요.\" 일 년에 두 차례 수련 결사를 하고 일정한 도량에서 장기 또는 한 철씩 함께 모여 연구, 수행, 정진하는 것을 중심으로 행자 교육 전문 도량과 승가 교육 청사진 마련, 교재의 한글화와 보완, 교수진의 단기 교육 사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데, 스님이 일 년 남짓 선우도량을 이끌어 가면서 부닥친 한계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한 한계는 오늘날 불교계가 안고 있는 문제와 맞물려 있어 더욱 그러하다. \"교단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많이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면 엄청난 한계를 느낍니다. 이 부분이 풀리지 않는 한 어떤 일을 성취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스님은 이렇게 불교가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로 \'선불교의 전통\'과 \'선정신\'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원인으로 들었는데, 이는 선우도량과 한국 불교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스님의 이십대 때의 선방 시절을 기억하는 도반 스님들은 그 때 스님의 분위기가 너무 고뇌에 차 있어서 절로 쓸쓸한 기분에 젖어들고는 했던 기억을 어렵지 않게 되살려 낸다. 그만큼 \'죽음\'의 문제에 깊숙이 빠져들었던 시기였다. 열일곱 나던 해, 불교와의 인연이 너무 무거웠던 까닭인지 절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어머니는 선뜻 \"그러마\" 하고 허락하여 금산사로 출가했다. 부모를 만난다거나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물론 외부인과의 접촉도 금기시되던 당시 절집안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따라서 어느 한 곳에도 한눈을 팔지 않은 채 공부를 했다. 곧이곧대로 절집에서 시키는 대로 생활하던 스님에게 수행자로서의 문제 의식을 갖고 수행하게 했던 사건은 다름 아닌 속가의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전갈이었다. 그러나 이미 끊은 속가와의 인연인데 어머님의 병환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스님을 보고 동갑나기였으나 스님보다 명석하고 어른스러웠던 도반이 저녁 예불을 마치고 나오면서 \"비록 출가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머니인데 그럴 수 있느냐?\"고 물었다. 도반의 나무라듯 쏘아보는 깊숙한 눈빛과 심각한 분위기 때문에 처음으로 죽음의 문제가 스님의 가슴에 강렬하게 물결쳤다. 그날부터 시작된 죽음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스님이 챙기고 있는 화두가 되었다. 의식이 온통 죽음의 문제에 집중된 뒤부터는 경전을 보는 일이나 부처님께 절하는 모든 일이 재미가 없었고, 끝없이 밀려오는 허탈감과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환경을 바꿔 볼 요량으로 어렵게 옮긴 해인강원에서도 시도때도없이 엄습하는 허탈감은 어쩌지 못했다. 그러나 부처님이 깨닫기 이전에 가졌던 인간적인 고민이나 문제 의식이 스님 자신과 같았다는 발견은 지금까지 출가의 길에 주저없이 몸담고 살아오게 하는 데에 충분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강원 시절, 경전 말고도 많은 책을 읽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만큼 스님의 정신을 뒤흔든 것은 없었다. 강원 졸업 석 달을 남겨놓고 강원을 나왔다.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무명과 진여의 관계\'와 잠깐도 떠나지 않는 죽음의 문제를 체험으로 풀어 보고자 해서였다. 송광사 삼 년 결사로 시작된 십여 년 간의 선방 생활에서 불교적 믿음이 윤리적이고 객관적이라기보다 믿음 그 자체로써 받아들여져 인생의 피와 살이 되고 체온이 될 수 있는 가르침으로 와 닿았다. 또한 우연히 \'기신론\'을 보게 되면서 그 동안 끝없이 스님의 의식을 옭아매었던 \'무명과 진여의 관계\'가 나름대로 정리되었다. \"죽음의 문제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허무와 허탈감에서 벗어나게 되었지요.\" 선방 생활 십 년 동안 스님이 교류한 사람은 같이 생활한 스님네들뿐, 외부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니, 스님이 얼마나 외곬로 그리고 푸른 눈빛으로 수행에만 정진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선방에서 나와 금산사에 있으면서 화엄학림을 만들어 화엄경 연구를 시작했다. 그것은 스님이 절실히 느껴왔던 \'선의 정신과 보살도 정신의 일치된 수행관 확립\'을 위한 실천의 한 가지 방법이었다. 스님네 열 분이 금산사에 같이 살면서 두 해 반 동안 \'화엄경\'을 온전하게 공부했다. 각성 스님을 강사로 모시고 공부했는데, 스님의 기억으로는 근래에 화엄경을 끝까지 공부한 적이 화엄학림에서 말고는 없었다고 한다. \"한국 불교가 새로워지려면 결국 승가 교육 문제의 체계화와 변혁으로 가능하다는 지적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승가 교육의 방향이나 내용을 도출해 내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기존 교단의 내적 풍토나 이미 굳어져 버린 관행이 지나치게 완고하다 보니까 구체적인 실천을 현실화시키는 데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지요. 체계적인 교육이 현실화되려면 질적이고 양적인 힘이 뒷받침될 때에 가능한데 아직 그러한 분위기가 무르익거나 힘이 축적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노력들이 지속되어져야 함이 중요하겠지요.\" \'승가 교육 문제\'나 \'수행관의 재정립의 문제\'가 앞으로 선우도량이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숙제임도 그런 까닭에서이다.
\"불교 수행 차원에서 욕심을 버린다면 불교는 아주 일상적이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염불을 한 번 하면 그 자체가 영험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면 되는데 사람들은 염불을 하고 나서 어떤 가피를 기대해요. 부처님의 영험은 그러한 기대를 버렸을 때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물질에 욕심을 부리듯이 불교 공부에도 욕심을 내고 달려드는 시정 사람들에게 들려준 스님의 당부는 \'버림\' 보다는 \'얻으려 함\'에 훨씬 익숙해진 우리가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할 말씀으로 느껴졌다. 어느덧 방안에 들어서면서 코끝을 시리게 했던 냉기는, 스님의 이십오 년 동안의 출가 생활을 돌아보는 동안 사라졌다. 차가운 일월의 겨울바람이 문풍지를 흔드는 가운데 어느새 겨울의 오후가 저물어 있었다. 굳게 닫힌 정혜사 일주문을 뒤로 하면서 그 문 속에 스스로 즐겨 갇혀 있는 수행자들이, 나아가서는 전국의 선방에서 면벽 정진하는 스님네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성대는 우리 삶의 방향을 바꿔주리라 기대하며 돌계단을 내려섰다. 잔설로 뒤덮인 덕숭산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