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들꽃 축제로 알려진 통도사 서운암을 찾았다. 통도사 계곡을 따라 난 도로를 오르는 길은 호젓했다. 절 안의 연못에는 노오란 연꽃들이 머리를 내밀고 우리를 반겼다. 꽃이 크지 않고 자그마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종류다. 그 연꽃들 사이로 통통하게 살찐 잉어들이 유유히 다니고 있었는데 " 철퍼덕" 뛰어오르는 소리가 시원하다. 절 옆으로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그 길 아래쪽 감나무 밭에 들꽃이 있어 그 길을 따라가며 꽃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철이 지나, 꽃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풀만 짙어 있었다. 걷다 보니 길이 끊긴 곳이 있어 어디로 가나 하다가 오르막을 오르니 언덕이 있다. 그 곳에 큰 소나무가 몇 그루 늠름하게 서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나무 아래 수녀님 두 분이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근처 수녀원에서 더위를 피해 시원하고 한적한 이 곳을 찾은 것이리라. 서로 눈을 마주치게 되어 머리를 수그리니 미소로 답했다. 겸연쩍은 듯한 미소를 띤 얼굴 표정이 편안했다. 그 곳에서 내려다 본 서운암 전경과 그 뒤로 펼쳐진 산이 그랬듯이.
언덕 아래에는 장독들이 줄 지어 따가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 안에는 된장이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모자를 쓰지 않고는 다니기 힘든 날씨니 장독 안의 온도는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 열을 식히기 위해 스프링 쿨러는 가느다란 물줄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아내는 절 안 가게에서 된장과 참기름을 샀다. 싼 것 같아 샀는데 서운하게도 참기름은 100% 중국산 깨로 만든 것이다.
산을 내려와 법당에 둘렀다가 산언덕을 올려다 보니 수녀님들은 아직 소나무 아래에 있었다. 언덕 위 소나무의 배경과 어울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동양화 속에 사람을 그려 넣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수 풍경만으로도 그림이 되지만, 그 속에 점과 같이 작게 사람이 그려져도 그림의 생명력이 살아 난다.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룰 때에는.
문득 몇 년 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경주 남산에 갔을 때 보았던 용장골 삼층 석탑이 떠올랐다. 탑은 거의 산봉우리에 자리잡아 산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산 전체가 탑인 것처럼 보인다. 무엇 때문에 그곳에 탑을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불국토를 꿈꾸며 찬란한 불교 문화의 꽃을 피웠던 신라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좀더 하늘에 가까워지려는 마음.
생각해 보면 서운암 산 언덕과 용장골 봉우리 풍경은 서로 닮아 있는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한 쪽에는 사람이, 다른 쪽에는 탑이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과 탑이 지상의 꿈을 하늘 나라, 인간의 이상향에 이어주고 있다고 할까. 나름 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이 복더위가 지나면 다가올 가을을 기다린다. 아니, 가을은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 사이 성큼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다만 말 그대로 결실의 계절을 노래할 수 있을지 그게 내심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