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독자의글

 
작성일 : 05-07-13 13:24
서각(書刻)에 대한 소고(小考)
 글쓴이 : 편집실
조회 : 11,642  
 

서각(書刻)에 대한  소고(小考)


                                                         김기철 (海印寺 刻字匠)


서각(書刻)이란 말 그대로 글씨를 쓰는 것(書)과 새김질(刻)을 합한 예술이다.

따라서 서각은 글씨를 종이에 쓰는 서예(書藝)나 그림(畵) 조각(彫刻)과는 다르게 이를 종합한 조형 예술이다. 원래 글씨를 쓴다는 행위는 문자를 전제로 한다.문자는 인간 사회에서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言語) 사용 이후에 발전해온 것이다. 서각은 이러한 문자를 어떤 재료에 옮겨 새김질로 형상화(形象化)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서각의 역사를 엄밀히 분석하자면 문자가 생기기 이전인 선사시대부터 시작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각이란 글씨를 형상화하는 것이 기본적인 형태이지만, 인간이 어떤 의미를 생각하고 돌이나 바위등에 무었인가 새김질을  시작 한 것은 문자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있었다 .이때 새기는 대상이 문자나 기호의 모습을 지녔다고 해도, 그런 것이 훗날 문자의 원류(原流)가 되었다고 보면, 그림이나 기호를 바위등에 새긴 암각화도 서각의 역사에서 취급 되어져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서각의 역사는 인류사에서 예술(藝術)의 시작과 궤를 같이 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에 이미 그림의 형태(形態)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그것을 어떤 재료에 새겨서 타인에게 전하고 길이 후손에게 남기려는 욕구(慾求)가 생긴, 고대 원시시대부터 시작하여, 인간의 미적 추구가 보편화(普遍化)된 현재에까지 서각의 역사는 계속 진행(進行)되어 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서각작품은 우리의 생활 전반에 어디서나 접할 수가 있으며, 서각의 흔적(痕迹)을 찾고자 한다면 어렵지 않게 우리 생활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다.가령 예를 들어 석기 시대에 각종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로부터 구갑(龜甲),우골(牛骨)에 새겨진 갑골문자, 석비, 솥, 종, 묘비, 바위 등에 새겨진 금석문자, 사찰이나 서원(書院) 등의 현판이나 주련, 편액, 문패, 명패는 물론 실내 장식용 문갑이나 사방탁자 필통 등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서 만들어진 모든 작품을 서각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남긴 귀한 문화유산으로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본인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세계 최고의 목판각 예술의 결정판인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도 우리의 소중한 서각 작품인 것이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서각이, 새기는 방법에 따라 체계적(體系的)으로 정립 된지는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다. 또한 근래에 와서는 전통 서각과 현대 서각으로 구분되어 소재와 제작 방법을 달리 하고 있다. 가령 전통서각의 작업 방법으로는 작품이 놓여질 공간에 따라 소재(대부분 나무)를 선택하며, 그곳에 어울리는 글씨나 그림등을 복사하여 붙이고 작가의 역량에 따라서 음각, 양각, 음양각, 음평각, 목판각 등의 기법으로 새기고 착색, 칠을 하여 완성(完成) 시킨다. 대체로 작품의 크기에 따라서 걸리는 시간이 다르며, 보통 현판(편액) 한 작품을 완성 하는 데는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반면 현대서각은 소재나 글씨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글씨나 그림등을 흩트려서 전통서각에서 느껴지는 딱딱하고 획일적인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파격적이고 추상적인 미적 감각으로 새기거나 긁어서 작품을 완성시킨다고 보면 되겠다.

인류 역사에 문자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사람들이 그림 보다는 대부분의 글자는 새겨서 그대로 사용하던지, 종이에 찍어 책으로 만들어 오랫동안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불과 백년 전만해도 목판본에 찍은 서적을 대부분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인쇄술의 발달과 컴퓨터의 출

현으로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출판하는 데도 대부분의 일들이 컴퓨터상에서 이루어 지기 때문에, 나무판 위에서 글자를 뒤집어 붙이고, 손으로 한자 한자 새겨서 작품을 완성하고, 거기에 먹물을 묻혀서 종이위에 찍는 목판본과는 시간적인 면이나 질적인 부분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차이가 난다. 가령 예를 들면 반야부 경전의 핵심인 반야심경의 전문을 컴퓨터로 친다면 불과 십여분 안에 입력이 가능하지만, 목판본으로 만들 때에는 글자를 뒤집어 목판에 붙이고 칼로 새겨서 바닥 처리를 한 후에 마구리를 완성 할 때까지의 기간은 하루에 10시간 이상 작업을 한다고 해도 적어도 3주일 가량 걸린다.

하지만 이런 컴퓨터가 지배하는 전자 판본의 시대에도 목판본은 다른 한편으로 보면 변함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런 그것이 Hand made 라는 가치 척도(尺度)도 있겠지만, 컴퓨터를 사용하면 어떤 사람이 해도 항상 똑같은 모양 뿐이지 거기에는 그 글을 쓴 사람의 개성과 정신이 들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목판본은 그것을 쓰고 새긴자의 정신이 담겨있는 살아있는 문자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은 수 년 동안 해인사에서 대장경 경판을 연구하고 제작하면서, 요즈음과 같이 컴퓨터 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이 시대에, 몇 백년 전에 상용화되었던 판각 작업에 왜 그런 열의(熱意)을 갖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종종 듣게 된다. 물런 우리 조상들이 남긴 귀한 문화유산인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직접 연구(硏究)하고 관찰(觀察)하는 것에 대한 큰 자부심과 남다른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감동을 느끼는 것은, 불심 아래에서 뭉쳐진 고려시대 각수들의  단결(團結)된 모습과 호국(護國)에 대한 염원, 경전의 글자 한자 한자라도 놓치지 않고 정성(精誠)드려 판각을 하는 일관되고 체계적(體系的)인 모습들과, 높은 완성도를 이루기 위한 각고(刻苦)의 노력들을 매경판 마다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몽고족의 침입을 불력으로 막아내고자 했던 절박한 고려인들의 호국(護國)에 대한 염원(念願)이, 전란중에 최고의 악 조건에서 최고의 대장경 경판을 만들어 내었던, 그 불가사의한 대역사가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사실 팔만대장경 경판을 보고 있으면, 그것을 새긴 고려 각수들의 예리한 칼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칼을 들어 적의 목으로 겨누지 않고, 나무판 위의 부처님의 말씀이 한자라도 잘못 새겨지지 않도록 예리(銳利)한 칼끝을 집중시킨, 호국 정신의 결정체이기에 경판 가득히 힘이 넘친다. 또한 막 혼례를 치를 신랑 각시의 고운 한복과 진지하고 엄숙한 자세를 연상하게 하는 단아(端雅)하고 엄정한 글씨체와, 물찬 재비와 같이 한껏 멋을 살리면서도 일관된 체계를 변함없이 유지한  목판각 예술의 꽃, 매경판 마다 느껴지는 신비하고  웅묘(雄妙)한 기운(氣運)은 보는 이의 숨을 죽이게 한다.

책을 찍어낸 것을 보아도 역시 많은 차이가 있다. 컴퓨터 조판으로 양지에 찍은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획일적(劃一的)인 똑같은 글자체에, 빛을 반사하는 종이도 그것을 보는 이의 눈을 쉽게 피로(疲勞)하게 만든다. 그에 비해 먹물로 한지에 찍은 목판본은 한 사람이 같은 목판으로 천권의 책을 찍어도 전부 그 모양은 조금씩 다 다르다. 그리고 신선(神仙)의 모습과도 같은 한지 위의 은은한 글자는 빛을 반사하지 않고 흡수성이 있어 보는 이의 번뇌나 망상까지도 흡수하여 해소(解消)시켜주는 매력이 있다.

모든 것을 사용하기 간단하고 편리한 것만 찾는 이 시대에, 서각(書刻)에 대한 의미(意味)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몽고와의 전쟁(戰爭)의 참화(慘禍) 속에서도 세계(世界)에 자랑할만한 위대한 판각의 역사를 이룬 고려시대 수많은 각수들의 피나는 노력(努力)과 투철한 애국 애족(愛國 愛族)의 정신(精神)에 다시 한번 머리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