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자유게시판


 
작성일 : 03-10-20 00:00
’자연’의 눈물-퍼온글
 글쓴이 : 이명호
조회 : 5,744  
올여름 줄기차게 쏟아진 비는 한맺힌 자연의 눈물이었다. 지금 이 땅의 산골에서는 아무 필요도 없는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농어촌도로정비법`이라는 법의 보호를 받아가며 환경영향평가를 합법적으로 피한 군·면도 수준의 도로들이 `도로포장률 높이기`라는 목표 아래 행정자치부의 양여금을 써 가며 건설되고 있다. 강원도나 경상북도에 가 보면 불과 농가 몇 채밖에 없는 깊은 산골에 2차선 확장 포장 공사가 수없이 진행되고 있다.

`농어촌 도로가 자연에 얼마나 상처를 주려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장에 가보아야 한다. 문제는 농어촌 도로 확포장은 매우 손쉽게 입안되고 실행된다는데에 있다. 실제로 군 단위 행정구역에 가서 농어촌 도로 입안 과정의 서류를 보면, 놀라움과 함께 실소와 의구심을 피할 수 없다. 간단한 서류 한 장의 사업계획으로 100억원 가까운 예산이 식은죽 먹기로 지출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필자가 살핀바, 군의 도로 담당 공무원이 지도 위에 빨간 사인펜으로 도로 표시를 한 것이 기본설계의 모든 것이었다. 그렇게 가볍게 그어진 빨간 선 밑에 깔린 생명들에게는 그날부터 죽음이 선포된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어설프게 설계되고 졸속 시공되는 농어촌도로를 비롯한 산골 도로들이 비가 많이 올 때는 큰 재앙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산골에 폭우가 쏟아져도 자연 상태를 유지하는 산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도로를 내느라 절개 사면이 많은 산에는 산사태가 쉽게 난다. 토사가 빗물에 씻겨 내려감은 물론, 그 토사가 불어난 계곡물과 함께 뒤엉킬 때는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한다. 그렇게 유속이 불은 산골의 물은 하류에도 아주 큰 피해를 초래한다.

홍수가 나고 수재가 날 때마다 주로 큰 도시나 강 하류 지역 문제가 부각이 되곤 한다. 그런 문제의 주요 원인의 하나가 바로 어설픈 임도나 농어촌 포장도로를 내느라 산골이 마구 파헤쳐지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태풍 피해에 대한 언론보도에는 이러한 점을 보도하지 못하였다. 믿기지 않으면 이번 태풍 매미가 지나간 자리인 경상북도의 보현산에 가보면 된다.

보현산 남쪽 사면은 보현산 꼭대기에 세운 천문대 진입을 위한 포장도로를 건설하면서 생긴 흉측한 절개사면이 많다. 이번 태풍 매미 때 보현산 남쪽 사면은 산사태가 크게 나서 진입도로가 잘려나가 계곡이 되기도 하고, 산자락 밑의 계곡 물은 넘치다 못해 도로까지 차올라 와 길을 망가뜨려 버렸다. 이런 교훈이 버젓이 산 남쪽에 나타나고 있는데도 보현산 북쪽에서는 또다른 산골 도로 포장공사가 청송군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이미 산을 절개한 폭이 무려 70m나 되고 깊이가 35m 되는 곳도 있다.

청송군을 포함한 전국의 시군에서 행해지고 있을 국토파괴 방조 행정과 예산 낭비는 중단돼야한다. 무차별한 건설 행정은 녹지를 줄이고 복사열을 증가시켜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고 나아가 이상 기후를 촉발하는 악순환의 한 고리가 되었다.

한겨레 2003.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