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자유게시판


 
작성일 : 03-07-06 00:00
선암사주지 지허스님의 날조된 법맥과 다맥
 글쓴이 : 장우철
조회 : 8,462  
해인사의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 중 한편을 이 사이트에 올립니다. 맑고 아름다운 이 사이트의 성격에 혹 안맞을 수도 있겠지만 최근 대단한 화제였던 책과 그 저자에 대한 진실입니다. 누군가가 나서지 않으면 그 진실은 영원히 묻혀질 수도 있으므로 감히 용기를 내었으며, 사실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최성민기자와 날조된 선암사의 진실(3)
6월 16일 오후 늦게 "아무도 말하지 않은 전통차의 참모습 지허스님의 차"의 기획자인 한겨레신문 최성민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최 ; 책의 내용이 날조되었다는데 어디 어디가 날조되었습니까?" "필자 ; 글의 내용을 안 읽어 보셨습니까?" …(중략)… "필자 ; 책 쓰실 때 선암사지도 안 읽어보셨습니까?" "최 ; 나는 그런 책 모르고 또 왜 읽어야 하느냐?" "필자 ; 그러면 전화로 말씀하시지 말고 반론을 공식적으로 요청했으니 정식으로 반론해 주십시오" "최 ; 너 젊은 사람이 ○○한테 사주 받고 고용되어 하는 짓 아니냐!, 너 내가 ○○ 할 테니까 기다려!" 필자가 신문지상에 게재를 요청하면서 담당기자에게 보낸 FAX중의 전화번호를 알아본 것도 문제지만 대신문사의 부장기자쯤 되는 사람이 이의를 제기한 독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막말을 해도 되는 일인지!, 또 필자는 나이가 이미 50 이 넘은 젊지는 않은 사람이다. 자중 바란다.
또한 6월 11일에는 (사)한국전통자생차보존회의 홈페이지www.geumdunsa.org 에 "지허스님의 차"중 왜곡된 내용에 대해 해명과 반론을 요청한 세 편의 글 가운데 두편의 글이 어떠한 통고 없이 일방적으로 삭제되고 말았으며, 이에 필자는 우리 나라의 비평과 토론 문화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기획자인 최성민 기자도 마찬가지이지만 지허스님도 이미 일 개인이 아니라 "근대한국불교선승10인"(최성민이 지허스님을 말함 : 표지)으로 꼽히기도 하고 (사)"한국전통자생차보존회"에서는 "전통차법제인간문화재"로 지정까지 한 공인(公人)이다. 그러니 만큼 지허스님의 저서는 두고두고 우리 나라 다인(茶人)들의 차에 대한 "대체적이며 본질적인 정신을 쓴 차의 실용서"(최성민기자: 불교신문)이고, 학문서는 아니라도 학습서가 될 것이며, 지침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저서 그 자체에 대한 내용도 검증과정을 거쳐야 하고 또 지허스님은 사회적으로도 대단한 존경을 받는 분이므로, 그 행적 또한 투명해야하며 역사 앞에서도 당당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필자의 의도는 사실과 진실을 밝히자는 데에 있으며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데 있지 않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러나 저자, 기획자, 출판사 모두 책임질 필요가 없는 책을 출간했을 리는 없으므로 지금까지의 묵살이나 삭제, 무대응(無對應)은 공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지암 여연스님이 불교신문에서 토론의 중단에 대해 "수행가는 자신의 언사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무슨 책임 없는 비겁함인가!"라고 한 내용도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 날조된 지허스님의 법맥, 다맥
ㆍ 선암사 칠전선원 다맥 제10세 벽파 찬영 선사, 제11세 함명 태선 선사, 제12세 경붕 익운 선사, 제13세 경운 원기 선사, 제14세 금봉 기림 선사, 제15세 선곡 지우 선사, 제16세 지허 지웅 선사 (지허스님의 차; 216, 217, 267, 268 275이하 쪽)
ㆍ 선곡스님은 선파스님이 돌아가시자 선파스님의 선, 다, 법맥을 이었다. 다맥 14세인 금봉스님이 열반하자 선곡스님은 다맥을 이어 15세가 되었다. 이는 법맥과 선(다)맥이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선맥과 법맥을 때로는 각기 다른 사람이, 때로는 한사람(16세인 본인의 경우처럼)이 잇는 경우도 있다. ( 216, 217 쪽 외)
▶ 우리가 사는 속가(俗家)에 부(父), 조부(祖父), 고조(高祖)로 이어지는 가문의 가계(家系)가 있듯이 승가(僧家)에는 스님들의 법계법맥(法系法脈)이 있다. 또 승가에는 삭발수계(削髮受戒))하는 득도사(得道師)와 오심전법(悟心傳法)하는 사법사(嗣法師)의 양 사승(師僧)이 있으며 득도사에게 오심전법하면 양종사(兩種師)를 겸하나 타사(他師)에게 오심전법하면 사법사를 별정(別定)한다. 사법사의 계통을 법계법맥 혹 종통종맥(宗統宗脈)이라고 하며 출가의 목표는 전도(傳道)에 있음으로 사법사를 더 소중히 하며 승가상전(僧家相傳)의 계보는 사법을 위주로 하는 법맥종통만이 존속(存續)하니 이것을 사법전등(嗣法傳燈)이라 한다. 현재 한국의 승려는 부용(芙蓉)의 양대제자인 서산(西山)과 부휴(浮休)의 법손(法孫)으로 그중 부휴의 법손은 근소(僅少)하고 서산대사의 법손이 창성(昌盛)한 바 그 중에서도 편양(鞭羊)파가 우성(尤盛)하다. 또한 한국의 법맥은 초조(初祖) 태고 보우(太古 普愚:1301-1382)이래 20여 개 파로 나뉘어 오늘에 이르는데 선암사에는 3개 파가 있었다.
그중 첫째가 월저(月渚)파로서 남암(南庵) 즉 대승암(大乘庵)에서 주로 거주하는 남암문파와, 주로 북암에 거주하는 호암(虎岩)파인 벽파문도(碧波門徒)가 있었고, 주로 칠전선원을 포함하는 큰절에서 거주하는 함월(涵月)파인 철경(鐵鏡)문도가 그것이며, 세 문파 는 여러 문제로 대중화합이 되지 못하고 분쟁이 있었다고 한다.
선암사의 법맥은 기록에 의하면 서산(西山)하의 임제태고종통(臨濟太古宗統)으로 편양(鞭羊)-풍담(楓潭)-월저(月渚)-설암(雪巖)-상월(霜月)-용담(龍潭)-규암(圭巖)-서월(瑞月)-회운(會雲)-원담(圓潭)-풍곡(豊谷)- 함명(函溟)으로 이어진다. 즉 임제태고종 월저파 세존(世尊)제75세 태고제18세가 함명 태선(太先)이며, 이어 세존 제76세 경붕 익운(景鵬益運), 제77세 경운 원기(擎雲元奇), 제78세 금봉 기림(錦峯基林), 제79세 용곡 정호(龍谷正浩)스님으로 이어진다. 그 중에서 선말(鮮末)부터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시기에 함명, 경붕, 경운, 금봉 4대 강백(講伯)의 뛰어난 강학(講學)활동으로 1문 4대 종사(宗師)를 배출한 선암사는 한국불교 교학(敎學)의 연원(淵源)이며, 상징으로 알려지게 된다. 따라서 교학과 강학의 상징인 4대종사가 선학(禪學)을 하여 존재하지도 않은 칠전선원의 다맥을 이을 수는 없는 일이다.
벽파 문도는 벽파대사의 문도들로 다맥 제10세라고 하는 벽파스님은 1882년 선암사 북암에 와서 1887년 입적할 때까지 북암에 머물렀으며, 칠전선원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고 지허스님은 벽파문도로 호암파이다. 즉, 세존 제73세 벽파 찬영(碧波贊英), 제74세 자암 경순(慈庵敬珣), 제75세 신봉 기정(信峰其正), 제76세 동운 우전(東雲祐典), 제77세 영월 선규(泳月鮮圭), 제78세 지허 지웅(指墟知雄)스님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선곡스님은 선암사와 크게 연고가 없는 부휴(浮休)파로서 제75세 용선(龍船), 제76세 유산(酉山), 제77세 선파(仙坡), 제78세 선곡(禪谷)스님으로 이어진다.
이 글의 내용에서 선암사 칠전선원의 다맥이 절대로 불가능한, 즉 남암문도, 북암문도, 부휴파의 3개 문파가 혼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날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지허스님의 법맥도 엄연히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하면 실제의 법사, 선조사(先祖師)를 부정하고 전혀 관계가 없는 부휴파 스님인 선곡스님과 선파스님, 그리고 그 이전 선대조사(先代祖師)는 월저파(月渚派)인 남암문도 4대 강백(講伯)으로 연결되는 법맥으로 조작되었다. 이런 경우 속세의 집안에서는 자기의 가계(家系)와 성(姓)을 임의로 바꾸고 즉 아버지, 할아버지를 부정하고 남의 집안의 가계와 성, 즉 남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취하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필자는 불가(佛家)의 일은 잘 모르므로 승가(僧家)에서는 과연 이런 일, 즉 환부역조(換父易祖)가 가능하고, 또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불교계 관련종단 여러분의 의견을 구하는 바이다. 〔참고 ; 『불조원류(佛祖源流)』, 불교출판사 /『한국불교의 법맥』, 해인총림(海印叢林);성철스님 著 /『선암사』, 승주군, 남도불교문화연구회〕

각기 처해있는 입장이 다를 수는 있지만 진실은 하나이며, 거짓은 열 개, 백 개로도 진실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무대응, 삭제한다고 진실을 덮을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최성민 기자는 이미 본인이 "지허스님의 차"의 기획자임을 밝힌 바 있으므로 이번 필자가 제기한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당당히 나섬은 물론 정당한 토론이 될 수 있도록 해명 혹은 반론해 주기를 다시 한번 정중히 요청한다. 그리고 필자는 필자의 고향인 순천(順天)에서 이런 역천(逆天)하는 일이 일어난데 대해서 큰 안타까움을 느끼며, 또한 본의아니게 거론된 분들에게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6월 18일 素 洲 張 瑀 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