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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6-11 00:00
효순이와 미선이를 추모하며
 글쓴이 : 이문옥
조회 : 7,659  
편집자님! 안녕하십니까?

90년대 언젠가 [월간 海印]지의 부탁을 받고 쓴 졸고 '고향간 이야기'가
[해인사를 거닐다]책에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부끄러운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작년 6.13 효순이 미선이가 참변을 당한지 1년을 맞아 추모의 글을 써서 저의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이 글을 한번 검토해 보시고, 다음 [海印]지에 올려도 책의 격을 깎아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올리시기를 바랍니다.

월간 [海印]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016-410-2727 이문옥 드림

추신 : 잘못 알고 원고를 첨부파일오 송고할려고 시도했다가 다시 씁니다.


[효순이와 미선이를 추모하며]

이문옥

지난해 6월 13일은 내게 특별한 날이었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로서 잊을 수 없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의정부에서 미국 병사의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이와 미선이의 참변 소식은 더욱 잊을 수가 없다.

그 꽃다운 소녀들이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되어 가던 중 어이없게도 미군병사의 장갑차에 치여 참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참담한 심정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시민들의 추모의 물결, 아니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 소리가 지금도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중학생이던 그 소녀들은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 미군 병사를 한국전쟁 때 우리 나라를 도와주었고, 지금도 우리 나라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해주러 한국에 와 있는 고마운 아저씨들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믿었던 미군들에게 어이없게도 생명을 잃었으니 어찌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막 벙그는 꽃봉오리 같은 효순이와 미선이가 강대국들도 무시할 수 없는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런 참변은 당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효순이와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은 그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는 것이 아닐까. 강대국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나라, 아니 그들에게 무시당해도 좋을 나라를 조국으로 태어나게 한 우리 어른들의 책임, 그 또한 면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고혼(孤魂)이 아직도 구천을 떠돌 것이라 생각하면 더욱 미안하고 안타까운 심정 가누기 어렵다.

그러나 작년 내내 광화문을 밝혔던 촛불 시위를 생각하면 그들이 이제는 영면(永眠)의 자리를 잡았을 것이라 위안도 해본다. 촛불 시위는 소녀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도임과 동시에, 오만하고 방자한 미국에 대한 항의이자 평화에 대한 갈구였다.

시청 앞 광장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거리를 촛불 든 시민들로 가득 메웠던 그 감동적인 모습,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손에 손에 치켜든 그 수많은 촛불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에 맞추어 울먹이며 따라 부르던 시민들의 '아침 이슬'은 조곡(弔哭)처럼 슬프게만 들렸다.

그런 가운데 이따금 "효순아! 미선아!" 하고 그 애들의 영혼을 부르는 것 같은 애타는 소리는 시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 틈에서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스님의 목탁 소리와 불자들의 염불 소리는 내 마음을 더욱 처연하게 만들었다. 시민들의 촛불 시위는 억울하게 죽어서 구천을 떠돌고 있을 '우리 모두의 딸 효순이 미선이'에 대한 천도제(遷度祭)와도 같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이제 효순이와 미선이가 발원하는 것은 차별하는 사람도 없고 차별 받는 사람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 자신들처럼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 나아가 한국과 미국 사이에 맺어진 불평등한 소파 협정을 평등한 협정으로 바꾸어 달라는 것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리기에 꿈도 많았을 효순이와 미선이, 힘이 강한 나라와 힘이 약한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는 일은 우리 어른들에게 맡기고, 이젠 극락 세계에서 영면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03. 6. )


*단락마다 간격을 띄운 것은 읽기 편하시라고 그리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