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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07-15 09:56
절간에 불러들인 ‘세속의 사랑 / 김선우
 글쓴이 : 편집실
조회 : 10,975  
 

절간에 불러들인 ‘세속의 사랑 / 김선우


해인사 ‘비로자나 쌍둥이불’ 사랑의 축제 부처가 된 진성여왕과 위홍이 긴 이별 끝 만난다. 오욕칠정을 받아 안은 탈속의 공간 우리 안의 부처를 발견하는 그윽한 놀이터가 되길

  

 여름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기 좋은 계절이다. 별들의 생사고락과 별들끼리 타전하는 노래와 시에 귀 기울이는 여름밤은 나 자신의 존재감의 층위를 겹겹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몽상을 촉발한다. 무엇보다 여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주의 운행이 어떤 즐거운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듯 한 느낌에 빠져들 때가 있다. 이럴 때 세상은 종종 불가지해 보인다. 하여 신비는 신비로 남기고, 지상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당이 우주의 놀이처럼 얼마나 즐거워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유희의 욕망은 본능이라기보다는 생에 적응하고 반작용하는 일종의 리드미컬한 율동 같은 것이다. 폭격이 지나간 폐허 위에서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거나 공을 차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공습 속에서 떠들썩한 혼례를 올리며 사랑을 한다. 지난 연대의 히피들이 반전운동에서 보여준 총구에 꽃을 꽂아주는 일이나, 탱크 앞에서 탬버린을 흔들고 서로의 어깨를 걸고 모여 춤을 추는 일. 그런 풍경들이 보여주는 서늘한 존재감 또한 생에의 율동이 감성과 만나 낳은 놀이문화가 바탕일 테다. 그것은 하고 싶은 대로 놀면서 저항하는 것, 놀다 보니 저항이 된 것들이며 구호가 아니라 소통을 향한 ‘표현’인 그 무엇이다.

 근래 몇 년 동안 사찰에서 여는 문화행사들이 부쩍 많아지고 다양해진 것도 이런 지점에서 내게 즐거운 뉴스였다. 고고한 수도의 장에서 격을 지닌 소통의 장으로 절집 문턱을 스스로 낮추고 있다는 것. 법보종찰 해인사에서 비로자나 사랑의 축제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뻤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탈속한 구도의 장에서 오욕칠정의 세속을 받아 안아 다독이면서 우리 안의 부처를 발견하는 일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새로운 놀이의 장 같은 것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쌍둥이 비로자나불의 봉안식이 겸해지는 생일잔치이기도 한 이 축제와 결부된 인물이 진성여왕이라는 점 또한 매혹적이다. 시차를 두고 제작되어 대적광전과 법보전에 이별하여 있었던 두 부처가 쌍둥이불로 발견된 것은 작년의 일이다. 아울러 진성여왕과 각간 위홍의 사랑이 촉매되어 조성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이때 알려졌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통일신라 목조불상이라는 것도 불상 내부에서 나온 묵서를 통해 밝혀졌다. 불가적 상상력은 문학적 상상력의 촉매 역할을 종종 하곤 하는데, 비로자나불은 특히나 그 독특한 수인과 분열되고 소외된 타자가 없는 화엄 광명을 꿈꾸게 한다는 점에서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런 비로자나불이 자연인으로서의 개인의 사랑이 발원지가 되었다는 것은, 불상이되 신성의 권위보다 인간의 피와 감성이 도드라진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친밀하다.

 진성여왕은 사랑했던 위홍이 죽자 해인사를 위홍의 원당으로 삼고, 난세를 함께 겪은 위홍을 기렸다고 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필두로 정사의 기록은 진성과 위홍의 사랑을 사통에 가까운 것으로 치부하지만,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성도덕과 혼인문화 위에 있었던 신라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합법적이고 인정된 것이라는 견해가 더 설득력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여인이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난 위홍과의 애틋한 사연도 그렇고, 신라 쇠망의 책임을 진성여왕에게 과도하게 짐지우고 있는 정사의 일반적 시각도 내겐 퍽 문제적으로 읽힌다.

 어느 자리에서든지, “나의 부덕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임금은 흔하지 않다. 그런 성찰을 방해하는 것이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부덕을 스스로 인정하며 임금의 자리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진성여왕에게서, 두루 칭송받았던 흠결 없는 정사의 기록을 가진 왕들보다 나는 더 깊은 인간적인 고뇌를 느낀다. 그리고 그이는 왕위에서 물러나 한 개인의 자리에서 자신의 사랑의 자리를 돌아보며 쓸쓸히 죽었다. 정사의 기록이란 흔히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기록일 가능성이 많다. “신라는 여자를 세워 임금자리에 앉혔으니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에나 있을 일이었고”라는 김부식의 기록이 반증하듯이, 중흥기를 지나 쇠퇴기에 접어든 신라의 여러 왕들 중 유독 여왕이었던 진성에게 망국의 책임이 일괄 부과된 것도 어쩌면 당연하겠다 싶다.

 해인사에서 기획하는 비로자나 사랑의 축제는 그래서 더 의미롭다. 구도처에서는 금기에 가까운 선남선녀의 사랑의 마음을 절집 안으로 성큼 들여놓은 것도 그렇거니와, 칭송의 대상이 아니라 여성비하적 정사 기술의 토대가 만들어놓은 폄훼의 대상을 사랑의 힘으로 복원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사찰에서, 구체적인 역사의 인물이었던 이들의 몸과 마음의 사랑을 포용하고 중생들의 만남과 사랑과 생명의 소통을 기원한다는 것, 그것은 ‘부처’라는 법신을 향한 사랑의 도장인 우리 불교의 다양한 발걸음과 개방성에의 능력이다. 사랑하는 일의 경계 없음을, 사랑을 할 때 우리 모두가 낱낱이 하나씩의 우주임을 귀하게 영접하고자 하는 해인의 마음이 세속 대중들의 외로움 많은 가슴에 밝은 눈이 되어주길 바란다. 어느 시대인들 사랑보다 강력한 치유력이 있겠는가. 이 비로자나불들의 인연과 만남의 드라마가 신성의 강제가 과하여 대중 속의 부처를 오히려 보지 못하는 우를 종종 범하곤 하는 종교의 벽을 훌쩍 넘을 수 있는 그윽한 놀이터, 잔치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