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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7-20 12:35
월간해인 필진 해인사 원제스님
 글쓴이 : dnjfrksg
조회 : 10,623  

"萬行 열 달, 인도서 만난 사기꾼도 내 부처님" 7월 12일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

[카우치 서핑으로 세계 여행… 원제 스님의 남다른 萬行法]

티베트서 태국·인도까지 10달… 더 교감하려 '카우치 서핑' 선택

사람들의 고민·역경 들었죠, 이번엔 유럽·아프리카·북미로 또다른 삶 나누고 오겠습니다

해인사 원제(圓帝·35) 스님은 작년 하안거(夏安居)를 난 뒤 9월부터 특별한 만행(萬行·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닦는 수행)에 나섰다. 9월 티베트를 시작으로 중국 각지를 돌며 두 달 반을 보냈고 이어 태국과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네팔, 인도까지 거쳐 지난 5일 귀국했다. 10개월여 아시아를 떠도는 동안 숙박은 모르는 이의 집에 공짜로 머무는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키워드〉으로 대부분 해결했다. 여행이 아니라 "사람들과 깊이 교감하겠다"는 만행의 목적이 상대의 집에 머물러 함께 생활하며 경험을 나누는 카우치 서핑의 취지와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11일 아침, 헝겊 바랑을 짊어진 채 서울 경복궁 건너편 법련사 앞에 나타난 스님은 머리에 쓴 삿갓 얘기부터 했다. "인도에선 현지인들이 하루에 100번쯤은 '삿갓 한번 써보자'며 붙잡더군요. 이래봬도 아시아 곳곳의 햇볕과 비바람을 다 겪고 버텨온 삿갓이에요. 하하."

◇선방을 떠나 세상 진창 속으로

서강대 종교학과를 나온 스님은 2006년 1월 전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 출가했다. 졸업식엔 가지 않았고, 쭉 선방(禪房)에서만 생활했다. 세계를 만행하겠다는 결심은 법전스님의 시봉 상좌를 마치던 2011년 초쯤 했다. "한 보살님이 그러셨어요. '선방에만 있어서는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혹독한 진창에서 사는지 알 수 없다. 세상을 돌아다녀 보면 혹시 알게 될지도 모른다'고요."

원제 스님은 지난 10개월간 중국에서 인도까지 아시아를 만행(萬行)했고, 이달 말부터 다시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 만행을 떠난다. 스님은“지금의 내게는 내게 다가와 고민을 털어놓는 이들과 대화하며 그 삶을 나누는 것이 가장 소중한 수행”이라고 했다. /이태훈 기자

길 위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스승이었다. 태국 치앙마이에선 옥스퍼드 출신 영국인 요가 수행자를 만났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서 함께 일했다는 그는 20년 전 실리콘밸리를 박차고 나와 하루 한 끼 생식만 하며 수행자로 살고 있었다. "그는 '옛 동료들은 쉼없이 일하고 채워 불행해졌지만, 나는 버리고 내려놓아 행복해졌다'고 했어요. 그의 얼굴에 깃든 평화에서 수행의 길로 들어선 내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 확신했지요."

◇"만행서 만난 모두가 내 부처님"

인도에서 푼돈 사기꾼들을 만날 땐 "저것도 살려는 몸부림이니 화를 내서 스스로 마음을 다치게 하기보다 속아주고 당해주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중국 윈난성 샹그릴라에서 눈 덮인 산을 함께 열흘간 트레킹했던 미국 노인 피에르는 스님이 보기에도 부러울 만큼 배려심 깊고 온화했다. 하지만 얼마 전 말기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연락해왔다. 스님은 "여행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면, 나는 사랑하고 화내고 병들고 죽어가는 모든 이야기들을 길 위에서 압축해 겪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스님은 그렇게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블로그와 페이스북에도 올리고, 해인사가 펴내는 월간 '해인'에 '원제스님의 세계 만행'으로도 연재하고 있다.

스님은 이달 말 다시 출국한다.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 남미, 북미까지 갈 계획이다. 내년 말까지 '세계 만행'을 마치는 것이 목표다. 스님은 "끊임없이 걸었고, 걷지 않는 동안은 계속 대화를 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자기 삶의 방향을 점검하고 전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제게 다가와 고민과 역경을 털어놓습니다. 제가 승복을 입고 머리를 깎았다는 이유로요. 지금 제게는 그들 모두가 길 위에서 만난 부처이고, 그들과 삶을 나누고 함께 경험을 쌓는 것이 가장 소중한 수행입니다."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잠잘 만한 ‘소파(couch)’를 ‘옮겨 다니는 일(surfing)’을 뜻하는 여행자 네트워크. 2004년 미국 보스턴의 한 대학생이 시작했다. 인터넷(www.couchsurfing.org)과 페이스북을 통해 운영되며, 세계 10만여 도시에 회원이 약 600만명에 달한다. ‘숙소 교환’이 아니라, A는 B를, B는 C를, C…Z 중 누군가는 다시 A를 재워주는 식으로 연결되는 일종의 ‘무료 숙소 품앗이’다. 여행을 원하는 ‘서퍼(surfer)’가 목적지 회원들에게 ‘호스트(host)’ 요청을 하면, 호스트는 자기소개서를 보고 교류하고 싶은 기술·지식·경험 등을 가진 서퍼를 선택, 숙박을 제공한다.